나만의 길이 대체 뭐길래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도 괜찮은데?

by 책하마

세상 사람들 따라하지 말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나만의 길을 개척해 봐! 그렇게 하는 사람이 진짜 성공하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행복할 자격이 있어. 남들 하는대로 살면 절대 특별해질 수 없어. 그저그렇게 따분하고 지루하게 살게 될 걸?? !@#%!^. 너만의 브랜드를!@#%!@#!.... 너만의 확실한 취향과 생각을 가지고!@#!ㅆ#$%ㅆ.....


20대 사회초년생 시절 흔하게 들었던 말들이다. 많은 강연에서, 자기계발서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가 '나만의 길'타령을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그래야 진짜 내 인생을 사는 것이라 행복하다고 했다. 물론 그들은 본인이 노력하여 성취한 경험을 젋은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태생적으로 승부욕이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총기 있는 젊은 친구들은 그런 메시지에 가슴이 뛰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과정 또한 자부심으로 가득해 행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길을 찾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성실한 의무감에 '나도 그래야지..?' 다짐하면서도 묘하게 부담되고 숨이 턱 막혔다.

나같은 사람이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지만 승부욕은 전혀 없고 에너지도 총명함도 낮은 사람.

그래서 처음 무언가를 시작하면 계속 실수만 하다가 멘붕에 빠져 세상에서 제일 무능력해보이는 사람

하지만 특유의 성실성과 책임감으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 어느 새 익숙해져서 다른 사람들 하는 만큼은 하게 되는 사람. 비로소 그 궤도에 오르면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그럭저럭 그 일을 잘 해내는 사람.

그런데 20대까지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인지 잘 몰랐다.

다이나믹하고 화려한 삶에서보다, 조용하고 안정된 삶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학창 시절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학생이었던 내가 싫었다. 통통 튀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친구들, 누가 뭐라든 자기 주장을 조리있게 말하는 친구들을 동경했다. 사회인이 돼서는 나도 변하고 싶었다. 나만의 색이 뚜렷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냥 안정을 추구하기보다는 내 길을 개척하고, 나만의 브랜드와 이미지, 확고한 취향과 생각을 가지고 어디서든 주목받는 사람이 돼야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부담감만 커졌다.


대학 졸업 후 교사가 되니 내 삶은 급속도로 안정됐다. 그러면 내 분수에 맞게 조용히 학교 일에 몰두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됐는데 자기계발서의 성공 선배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렇게 안주할 테야? 대학원 가서 석박사학위도 따고 그러다 외국에 유학도 다녀오고, 다양한 다른 활동도 하고 강의도 하면서 교수님 소리도 듣고 그래야지! 나만의 브랜드!!! 누구나 우러러보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돼야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여성 리더!!.....' 자꾸만 나의 허영심을 부추겼다.


그래서 교직 2년차에 대학원을 등록하며 생각했다. 석사 후 바로 박사과정을 해야지. 그리고 기회가 되면 외국 유학도 가야지. 박사공부를 하며 여기저기 강의도 해보고, 교수님 소리도 들어야지. 교사가 된 것에 안주하지 말아야지. 최대한 많이 공부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해야지. 그래야 성공한 인생이지. 독보적인 나만의 길을 걸어야지.


하지만 대학원 공부와 학교 일을 병행하며 내가 성실하지만 얼마나 에너지가 낮은 사람인지 알게 됐다.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독보적인 사람이 된다면 물론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성향상 그 모든 것을 해내는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계발서에서 주입된 의무감과 허영심을 모두 버리고 보니, 나는 성취감보다는 안정감이 더 좋은 사람이었다.


나의 본성 덕분인가, 석사 후 쉬지 않고 박사과정을 할거라던 다짐은 석사과정 중 만난 지금의 남편과의 결혼을 핑계로 완전히 잊혀졌다. 나의 허황된 다짐을 들었던 교수님들은 '결혼하고 애 가지면 박사과정 힘들어. 진진짜 니가 박사도 하며 공부도 다른 것도 많이 해보려면 결혼을 좀 미뤄봐. 아직 20대잖아. 결혼하면 현실에 안주하게 될 텐데...'라며 걱정하셨다. 하지만 그런 충고들은 내 본성을 꺾을 수 없었다. 나는 안정을 택했다. 석사과정만 간신히 마치고 학교 일에만 충실했다. 스물여덟 살에 결혼을 하고 서른 살에 딸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지금은 선생님 노릇과 엄마 노릇만으로 하루 에너지를 몽땅 써서 허덕이는 평범한 워킹맘이 됐다. 유학파 교수도, 성공적인 여성 리더도 아닌..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사람이 됐다. 독보적인 나만의 길이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허전하거나 아쉬운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No!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대때 허영심으로 나와 어울리지 않는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지금의 내 선택에 감사한다.

자기계발서들에서는 말한다. 지금의 나처럼 살면 안정적이고 평온하지만 지루하고 따분하지 않냐고. 어딘가 공허하고, 다른 사람과 별다를 게 없는 삶이 별로 성공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자기계발서들의 주인공들과 나는 태생부터가 다른 사람이다. 나는 그들이 뭐래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 남들보다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내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산다. 몇 인분을 해내는 그 주인공들과는 달리 나는 내 1인분에 충실하려 한다. 매일 주어진 루틴을, 열심히도 잘도 아니고 '그냥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산다. 몇 인분을 해내지 않은 에너지를 아껴 조용한 취미를 즐기기도 한다. 잔잔한 에세이와 소설을 읽거나, 이렇게 브런치에 주절주절 끄적이는 것처럼.


몇 년 전 퍼스널컬러 진단을 했다. 퍼스널컬러조차 나는 연한 파스텔톤이 베스트라는 진단이 나왔다.

퍼스널컬러조차 내 성향을 닮는 것인가. 화려하고 쨍해서 멀리서 봐도 한 눈에 들어오는 컬러는 나에게 독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색이 얼굴빛을 살리는데 나는 쨍한 색 속에 내 얼굴이 파묻히는 모양새다. 진단결과를 듣고 피식 웃었다. 그래. 화장도 연하게 한 듯 안한 듯. 옷 색깔도 흰 색에 가까운 톤으로, 악세서리도 보일 듯 말 듯 하는 게 나한테 가장 어울린다며. 나는 일상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보일 듯 말 듯 남들 많이 가는 길 조용히 따라가면서, 그 길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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