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화가 버럭 난다

엄마라는 이유로 늘 단호하지만 '친절해야' 할까

by 책하마

딸아이가 5살 무렵 많이 읽어주던 그림책의 초반부에, 화를 버럭 내는 엄마가 등장했다.

엄마가 화를 내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했다.

'아이가 말썽을 부려서'


아이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다가 방 벽에까지 낙서를 했고,

자장면을 먹다가는 온 몸과 옷과 식탁 주변 등을 자장소스로 더렵혔다.

심지어 목욕탕을 비누거품으로 범벅을 해 놓으며 지저분하고도 위험천만한 곳으로 만들었다.


아이의 엄마는 그 때마다 아이에게 버럭 화를 냈다.

이런 장난 하지말라고 했어 안 했어?!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그 장면에서 엄마의 얼굴은, 주변 배경은 너무 무섭고 괴상하게 묘사됐다.


엄마가 화를 내자 아이는 슬퍼하며 점점 위축되더니 사라져버렸다.


절망한 엄마는 아이를 찾으러 떠난다.

찾는 여정에서 아이의 마음속을 말하는 듯한 로봇들(?)을 만나며 엄마는 본인이 화를 버럭 낸 것을 너무너무 후회한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하고 울자, 아이는 다시 나타나 엄마 품에 안긴다.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 나도 우리 딸한테 화내지 말아야지.

아무리 장난을 쳐도.. 단호하면서도 친절하게...해야겠다. 라고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그게 늘 가능한 일일까??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는 정말 고맙게도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하루 중 대부분은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누고, 아직은(2-3년 후면 안 할 것 같다) 포옹도 하고 뽀뽀도 한다. 하지만 꼭 하루 한두 번은 나의 신경을 긁어 놓는다. 학생들 하교시키고 부랴부랴 집에 오면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어질러 놓고 침대 위에서 과자를 먹고 있질 않나, 수영장에 가는 버스를 4시 30분에 집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상가 앞에서 타야 하는데 4시 20분이 돼서도 천하태평 빈둥거리고있질 않나, 퇴근하고 앉지도 못하고 바쁘게 저녁을 차렸는데 온갖 반찬투정을 하며 깨작거리질 않나, 학교 숙제부터 하라고 하면 "응~싫어~"하고 빈정거리질 않나. 처음 그런 만행을 저지르면 마음 먹은 대로 단호하면서도 친절하게 주의를 줬다. 하지만 딸아이는 들은 척도 하질 않는다.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고 결국 폭발해 큰 소리로 버럭 화를 낸다. 그야말로 뒤지게 혼을 낸다. 그제서야 장난이 아닌 분위기를 감지하고 고분고분해지는 우리 딸-


이제 나는 예전 그 그림책의 내용을 생각하며 반성하기는 커녕.... 딴지를 거는 초등 엄마가 됐다.


아니, 애가 벽에 낙서를 하고, 자장소스로 주변을 더럽히고, 비누거품 번벅을 해 놓으면

안그래도 퇴근하자마자 또 육아와 집안일 모드에 돌입한 엄마는 심신이 지친 와중에 그 뒤치다거리를 다 해야 하는데, 당연히 화가 나는 거 아냐? 거기서 버럭 화를 안 낼 수 있어?

그리고 애도 그래. 엄마가 자기 말썽부린것 갖다가 버럭 화를 내면 반성을 하고 싹싹 빌어야지. 엄마가 널 때린 것도 아니고, 욕설이나 인신공격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 행동때문에 내가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버럭했을 뿐인데 왜 위축되고 사라져 버리고 난리야? 자기가 잘못한 건 생각도 안 하고 "재미있게 놀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어지럽혔어요~"라고 변명만 할 줄 알고, 자기 행동에 대한 뒷수습과 반성은 하나도 하지 않고, 엄마가 화좀 내니까 뭐 대단한 학대를 당한 것 마냥 삐져서 집을 나가버리다니! 그것만으로도 더 혼이 나야 했을텐데 엄마가 그 상황에서 미안하다고 해버리니까! 자기가 잘못한게 아니라 엄마가 화낸 게 잘못이라고 마치 화낸 엄마를 용서하는 것처럼 그림책이 끝나버렸으니!! 그렇게 유아 시절을 보내왔으니!! 이제 청소년이 됐을 너네가 학교에서 조금만 혼나고 조금만 힘들어도 반성 없이 회피해버리고 선생님이 내마음을 읽지 않아 기분상해죄니 뭐니 그딴 이야기나 하는 것 아니니?!!


.. 이딴 식으로 나는.. 딸아이에게 버럭하는 나의 행동에자주 합리화를 해버리곤 한다.


화 내지 않고 차분하게 훈육하는 것.


교사로서의 내가 근무 시간에 정신 좀 바짝 차리고 노력하면 학생들 대상으로는 지킬 수 있는 덕목이다.

왜냐? 내가 걔네 보호자가 아니라서, 그들이 온전히 자립하도록 성인이 될 때까지 온전히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저 등교와 하교 시간이 정해져 있는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 규칙에 적절히 맞게 가르치면 되니까. '청소년들은 아직 이성적 사고능력이 발달하지 못했지' 생각하면.. 청소년인 그들이 문제행동을 하면 조금 곤란하긴 해도 화가 치밀어오르진 않으니까. 그래서 학생들에게는 버럭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로서의 나는 저런 덕목을 지키기 참 어렵다.

왜냐? 나는 딸아이의 보호자니까. 스무 살 되기 전까지 이 아이가 온전히 자립할 수 있는 역량과 태도를 길러 줄 가장 큰 책임이 있으니까. 딸아이 양육에 대한 책임은 등하교도 출퇴근도 없으니까. 혹시 학교나 학원에 가서 우리딸이 천덕꾸러기가 된다면 너무 속상하니까. 그래서 '아직 너는 어린이니까 이성적 사고능력이 없겠지' 머리로는 알아도, 전전긍긍 조급한 마음에 자꾸만 화가 치밀어 오르니까. 그래서 자꾸만 버럭하게 된다.


참 어려운 영역아다. 단호하면서도 친절하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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