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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존슨 증후군 29년차-눈

모든부위에서 사라졌지만 눈에는 남아 있는 후유증

by 책하마

아침 6시 20분 기상 알람.

알람을 끄기도 전에 더듬더듬 안약 파우치부터 찾는다.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오른쪽 어깨 옆에 놓아 두는 안약 파우치. 해외여행을 간다면 나에게는 여권보다도 중요한 안약 파우치. 안약 파우치에서 1회용 인공눈물약을 꺼낸다. 뚜껑을 비틀어 딴다. 한 방울은 파우치 안에 늘 넣어두는 손수건에 떨어뜨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미세 플라스틱을 흘려보낸다. 또 한 방울은 오른쪽 눈에, 또 한 방울은 왼쪽 눈에 떨어뜨린다. 그제서야 눈을 뜰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뻑뻑하고 아프고 눈이 부셔서 기상 시 눈을 도저히 뜰 수가 없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러 부엌에 간다. 물을 한 잔 마신 후 냉장고를 열어 요리할 식재료부터 꺼내는 게 아니라 아이커비스라는 안약을 꺼낸다. 이 안약은 냉장보관하는 안약이다. 아침식사 준비할 때 한 번, 저녁식사 준비할 때 한 번. 이렇게 하루 두 번 넣는다. 이 약은 넣고 나면 얼얼한 통증이 느껴진다. 마치 비눗물이 눈에 들어간 느낌이다. 그래서 손수건으로 두 눈을 살짝 누르며 지그시 감고 30초정도 기다린다. 눈을 떠보니 눈이 새빨갛다. 이 안약을 넣으면 일시적으로 눈이 빨개진다. 하지만 30초정도 더 지나면 충혈도 자라지고 한결 상쾌하다. 이렇게 매일 두 번씩 넣는 아이커비스는 일시적으로 눈물을 공급하는 인공눈물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나처럼 각막 한가득 상처투성이에 눈물샘이 고장나 늘 건조한 안구에 넣으면, 눈물샘의 기능을 도와 눈 안에서 눈물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안과 의사선생님들께서 '스티븐존슨증후군 후유증이 있는 안구에는 반드시 꾸준히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딸아이는 등교 준비를, 나도 외출 준비를 한다. 간단히 씻고 옷을 입으면 메이크업을 할 차례다. 기초로션을 바르고 바로 메이크업 베이스부터 바르는 게 아니라, 블레파졸이라는 안구 세정제로 양 눈꺼플을 닦아 준다. 눈에 직접 닿는 눈꺼플부분이 나는 살짝 뒤집어져있고 울퉁불퉁하니 이물질이 많이 껴서 매일 닦아줘야 한다. 뒤집어진 눈꺼풀 때문에 나 혼자 아이라인을 그리거나 속눈썹을 붙이기 어렵다. 그래서 메이크업할 때 피부와 립만 살짝 하는 편이다. 눈꺼플을 닦으면 일시적으로 건조해진 느낌이 들어 듀라티어즈 안연고를 살짝 넣고 눈을 감는다. 액체형태가 아니라 바세린같은 제형이라 넣고 나면 일시적으로 시야가 뿌옆다. 하지만 눈이 아주 편안해진다. 메이크업을 다 하면 손거울을 눈에 가까이 대고 혹시 하얀 덩어리 눈곱이 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다. 듀라티어즈를 넣으면 흰 덩어리 눈곱이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보니 구름 한 점 없이 쨍쨍한 햇살이 가득하다. 푸르고 청량한 날씨에 상쾌하면서도 긴장된다. 오늘은 눈 컨디션이 어느정도인지 햇살 아래에서 확연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은 눈 컨디션이 최상이다. 최상인 날에는 썬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아도 눈을 편안하게 뜰 수 있다. 눈 컨디션이 그저 그런 날에는 썬글라스를 껴야 편안하게 눈을 뜰 수 있다. 눈 컨디션이 아주 안 좋은 날에는 썬글라스를 껴도 그 안에서 눈물이 줄줄 나고 눈이 충혈된다. 아파서 1시간에 한 번씩 듀라티얼즈를 넣어야 한다.


눈 컨디션이 아주 안 좋다면 분명 염증이 생긴 것이다. 염증이 수시로 생기기 때문에 그 때마다 안과를 가기는 번거롭다. 안과도 매우 오래 다녔기에 의사선생님께서 스테로이드 안약(로테프로), 항생제 안약(크라비트)을 대량 처방해 주셨다. 가지고 있다가 이런 날은 하루에 각각 4번 이내로 넣는다. 운이 좋으면 반나절이나 하루 만에 염증이 없어져 눈 컨디션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며칠 지속될 때도 있다. 이러면 염증 뿐 아니라 솜털같은 속눈썹도 각막으로 파고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각막이 벗겨지고 뒤집어지면서 속눈썹도 가끔 눈 속으로 파고든다. 집에 돌아오면 독서등을 켜 거울 가까이 대고 눈을 살피며 속눈썹 뽑는 핀셋으로 속눈썹을 뽑는다. 대개 솜털처럼 아주 가느다란 눈썹들이 말썽이다. 아주 가늘고 부드러워보여도 각막에 닿으면 매우 따갑고 눈이 부시다. 고등학교 때 부터는 내가 혼자 가느다란 속눈썹도 뽑아서 그런지 능숙하게 뽑는다. 대부분 속눈썹까지 뽑으면 다음날 눈 컨디션이 회복된다. 그래도 호전되지 않으면 그제서야 안과에 간다. 안과에서도 별 다른 조치가 없다. 더 섬세하게 속눈썹을 살펴 뽑고, 미리 처방해 준 염증약을 며칠 더 넣어보라고 할 뿐이다.


하루종일 눈이 건조하다고 느낄 때마다 수시로 인공눈물약을 넣고, 많이 건조해 쓰리다고 느끼면 듀라티얼즈도 넣는다. "안약 참 자주 넣는다. 불편하지 않아?"하고 주변에서 물어보는데, 9살때부터 나의 일상이었기에 무의식적으로 넣어 전혀 불편하진 않다. 안약 파우치도 30년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나의 분신처럼 늘 소지한다. 나는 지진이나 화재가 났을 때 다른 짐은 다 두고 대피하더라도 안약파우치만큼은 나도 모르게 챙겨갈 것 같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 듀라티얼즈를 꺼내 눈에 듬~뿍 넣는다. 오랜 시간 눈을 감고 인공눈물을 넣지 않을 것이기에 충분히 넣어준다. 듀라티얼즈를 제대로 안 넣고 자면 다음 날 일어나서 눈이 더 많이 뻑뻑하다.


이제 가늠할 수조차 없다. 스티븐존슨 증후군을 앓기 이전, 어린 시절의 안약 없이도 지낼 수 있는 평범한 눈을 가졌던 그 때. 쨍쨍한 햇살을 봐도 혹시 눈이 아플까 긴장하는 일이 없던 그때 나는 건강한 눈을 가진 것이 당연했다. 여러 가지 안약들 없이, 속눈썹 뽑는 핀셋도 필요 없이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며 사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9살 때 스티븐존슨증후군이 내 눈을 괴롭히고 지나간 이후, 아주 서~서히 조금씩 각막의 상태는 호전되고 있지만, 평생 그 이전의 멀쩡한 눈으로까지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평생 나는 안약을 넣으며 눈 컨디션을 조절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스티븐존슨 증후군은 고열이 나기 시작해 온 몸의 피부와 각막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벗겨지는 희귀 질환이다. 머리카락과 손발톱도 모두 빠져버린다.

고열은 며칠 만에 가라앉았고, 머리카락은 1년 지나니 다시 자랐다. 손발톱도 비슷한 시기에 새로 났다.

얼룩덜룩하던 피부는 10년이 지나 고3 무렵쯤 말끔해졌다.

다른 부위 후유증은 빨리 혹은 서서히 희미해지다가 사라졌지만, 눈의 후유증은 남았다.


평생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간 스티븐존슨 증후군이라는 질환은,

나의 학창시절을 외모 컴플렉스로 인한 열등감에 시달리게 했으며,

그 열등감이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보상심리로 바뀌어 늘 타인의 외모 칭찬에 목말랐다.

30대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스티븐존슨 증후군과 나를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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