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신체적, 정신적으로 나를 뒤흔들었던. 어쩌면 현재진행형이기도.
그 날 이전, 나는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동그랗고 큰 눈에 살포시 내려앉은 듯한 속눈썹이 매우 길었다. 너무 길어서 성냥을 속눈썹 위에 얹을 수 있을 정도였다.
피부가 아주 희지는 않았지만 깨끗하고 맑았다.
둥근 얼굴에 입술을 앙다물고 도도한 표정을 지어도, 유치 앞니가 빠진 텅 빈 잇몸을 훤히 드러내보이며 활짝 웃어도 인형같이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도, 학교에 입학해서도 반 친구들이 먼저 다가왔다. 지금도 내성적이지만 당시에는 절대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는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늘 친구들과 함께 다녔다.
눈의 모양도 예뻤지만 시력도 참 좋았다. 학교에서 시력검사했을 때 양쪽 눈 모두 1.5였다.
모두가 예쁘다고 해주니 늘 우쭐하고 기분이 좋아 밝고 적극적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체육활동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좋아했다. 체육활동이 있는 날인데 날이 흐리고 비가 오면 못내 아쉬웠고, 반대로 눈부신 햇살과 화창한 하늘을 보면 깡총깡총 뛰며 신이 나던 아이였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나의 모습도 성격도 180도 바뀌었다.
1995년 초. 1학년 종업식 후 2학년을 기다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전날 펄펄 눈이 내려 가족들과 눈을 흠뻑 맞으며 설경을 보고 왔는데 그만 감기에 걸렸다. 평소 감기나 배탈이 나면 가곤 했던 내과에서 여느때처럼 감기약과 해열제를 처방받았다, 다른 때처럼 약을 먹고 하루 푹 자면 한결 낫겠지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크고 예쁘던 눈은 온통 충혈돼 있었다.
맑고 깨끗하던 피부에는 보기 흉한 빨간 반점들이 잔뜩 돋아나며 벗겨지고 진물이 났다,
열이 내리지 않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부모님은 하루아침에 달라져버린 나를 보고 사색이 됐다. 일단 아침밥부터 든든히 먹고 병원에 가자고 하셨다.
하지만 혀에 백태가 생겨 평소 좋아하던 음식들을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먹든 아주 쓴 맛이 나 도로 뱉어버렸다.
이상해진 내 모습에 무서워서 엉엉 울며 병원에 갔다.
감기약을 처방해줬던 내과의 의사선생님도 사색이 되어 바로 대학병원으로 보내셨다.
대학병원에 도착하자 그곳의 많은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나를 보며 사색이 됐다. "지금 당장 입원시켜야 한다. 스티븐존슨증후군이 의심된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점점 열이 오르고 한 번도 겪지 못한 안구 통증도 점점 심해졌다.
스티븐존슨 증후군은 갑자기 변화된 면역체계로 인해 늘 문제 없이 복용하던 약이 갑자기 부작용을 일으켜 발생한다. 아주 희귀한 질환이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무서운 불청객이다. 마치 내 남동생이 아무 예고도 없이 원인도 모른 채 발달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처럼.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이 막연히 걱정되고 공포스럽다.
병원에 입원해 내 몸을 살펴보니 피부 반점들과 벗겨짐은 얼굴 전체, 상반신 전체에 극심하게 퍼져 있었다. 마치 3도 화상을 입은 사람의 몸과 같았다. 상처들로 균이 들어가면 큰일이라며 '드레싱'이라는 처치를 했다. 소독약에 푹 담근 붕대를 온 몸에 감는 것이었다. 칼에 살짝 벤 상처에 빨간약이라고 불리는 소독약을 떨어뜨려도 꽤 아프다. 하지만 당시 난 온 몸이 상처나 마찬가지였기에 드레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파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나를 보며 부모님도 엉엉 울었다.
드레싱처치는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그날 밤부터 병원 침대에서 사경을 헤매기 시작했다.
40도가 넘어가는 고열에 시달리며 꿈인지 환각과 환시인지 초현실적인 장면이 보였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으며 "편안한 곳으로 가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당시 MS-DOS컴퓨터 게임 캐릭터였던 공룡이었다가, 토요미스테리에 나온 검은 옷 저승사자같기도 했다. 그러다 드라마 M에 나오던 초록 눈 괴물로 변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누군가가 너무 공포스러워 기를 쓰고 손을 뺐다. 그 초현실속에서 손을 잡히고, 빼며 한창 실랑이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마지막으로 손을 뿌리치며 도망치자 그 초현실은 사라졌다. 그리고는 노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사경을 헤매다가 서서히 열이 내렸다. 잠에서 깨어나니 의사들이 "고비는 넘긴 것 같다"라고 했다. 부모님은 안도감에, 사경을 헤매던 날 지켜보다가 지쳤기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더이상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열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눈이 너무 아프고 부셔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드레싱 처치 때문에 붕대로 칭칭 감긴 내 몸은 조금만 움직여도 너무 쓰라렸다.
그날 이후 한 달간 입원해 눈과 피부에 집중치료를 받았고, 아주 긴긴 세월동안 통원치료를 받는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