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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이 싫던 학생이 특수교사가 됐다.

학교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기억과 생각

by 책하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어느 화창한 봄날.

반 친구들의 염원대로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이다. 게다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나가 놀기 딱 좋은 날씨이다. 역시나 운동장에 모인 친구들은 이런 날씨에 한껏 들떠 있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웃고 있다. 하지만 왜 마음 한구석은 무거울까,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된다. 저 아름다운 햇살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한껏 들뜨게 하는데 내 마음은 한껏 짓누르는 것 같다.


"소풍날 날씨 좋아서 좋겠네 우리딸.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다가 오렴."

소풍 도시락을 쥐어주며 했던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음.. 소풍가는 날은 즐거운 게 정상이구나. 나도 즐거워야하는 게 맞구나.

그럼 지금 내 마음도 들뜬 게 맞겠지?


하지만 들뜨고 신나는 마음보다 긴장이 되고, 한없이 귀찮고, 걱정이 앞섰다.

햇살에 눈이 많이 부시진 않을까,

멋지고 인기 많은 아이들에 비해 나랑 내 조용한 친구들은 너무 찐따처럼 보이지 않을까,

돌발 상황이 생기거나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풍날 마음 한켠으로 이런 걱정을 하는 어린이가 있을까.

그런 어린이가 나였다.


나는 소풍날보다 조용히 정상수업을 하는 날이 좋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줄곧.

정상수업을 하는 날엔 조용히 앉아 선생님의 수업을 귀담아 듣기만 하면 됐다. 모두가 조용하게 앉아 있어서 안심이 됐고 내 주특기인 성실한 태도만 발휘하면 됐다. 쉬는시간은 10분 남짓이라 나처럼 조용한 친구들과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장실이나 다녀오면 됐다. 점심시간에도 밥을 먹고 조용히 앉아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나를 닮은 내 친구들 또한 조용했다. 어제 음악캠프 신화 오빠들의 무대가 멋졌다는 이야기, 요즈음 갑자기 지오디가 떠서 신화오빠들이 대상을 못 타게 생긴 게 짜증난다는 이야기, 지오디는 육아일기로 뜬 거지 우리 신화오빠들처럼 탄탄한 실력과 무결점 외모로 뜬 것이 아니라는 등 나의 사심이 가득한 이야기들. 학교 안에서는 모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생활했기에 나의 이런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한구석에서 조용히 놀던 나와 다르게 소리를 꽥꽥 지르고 춤을 추고 선생님 몰래 화장을 하며 깔깔거리는, 매우 '인싸'였던 친구들이 교실 중심에 있었지만... 그래도 정상수업을 하는 평소에는 그들과 나의 차이가 도드라진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풍날 소위 '인싸'인 친구들은 더 화려하게 빛났고, '아싸'였던 나는 더 초라해졌다. 목소리도 크고 말도 웃기게 잘하고 인기도 많언 인싸 친구들은 어쩜 사복을 입어도 그렇게 잘 입던지.. 당시 고등학생 패션계의 로망이던 얼짱 반윤희님처럼 힙하고 멋진 그 인싸 친구들. 엄마가 사다 줘서 엄마 눈에는 너무 깔끔하고 예쁘고 공주같지만 학생들이 보기에는 묘하게 찐따 같고 촌스러운 옷을 입은 나. 아무도 놀리지도 않았고 비교하지도 않았는데 옷차림부터가 너무 창피했다.


힙한 옷을 입은 인싸 친구들은 소풍지에서 더 반짝반짝 빛났다. 교실에서도 컸던 목소리는 더 커졌고 우르르 모여 한껏 존재감을 드러내며 인싸의 아우라를 뿜어댔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도 친한 친구들과 함께했지만 그 친구들도 나처럼 비슷하게 수수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다녔다. 가뜩이나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에서 쉽게 지치는 나였는데, 그 시절 소풍지는 늘 시끄러운 곳이었다. 한국 민속촌, 에버랜드, 롯데월드... 조금 멀리 수학여행을 가면 불국사, 석굴암 등등... 사람구경을 하러 나왔나 싶을 정도로 늘 붐비는 이 장소에, 가족들과 편하게 오기도 싫은 이 시끄러운 장소에 굳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과(친하지도 않은 학생들이 더 많은데 굳이 이렇게 떼거지로 함께) 와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지만 나 빼고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애써 나도 즐거운 척을 했나보다. 나도 다른 학생들처럼 소풍을 좋아하는 학생이야. 나만 특이하게 소풍을 힘들어하진 않아. 난 전혀 음침하게나 사회성 없는 애도 아니고,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 걸. 무의식적으로 즐거워하려고 노력했다.

초등학교 때는, 내가 스티븐존슨 후유증으로 눈이 너무 아파서 그런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 햇볕에서도 그럭저럭 견딜만해 질 무렵인 고등학교때도, 성인이 돼서 대학 엠티에서조차도 내 마음은 비슷했다.

이 좋은 날, 소풍이 아니라, 엠티가 아니라.

그냥 조용한 교실에서, 카페에서, 도서관 안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싶은 기분.

저 경치에 뛰어들어 소란한 풍경에 녹아드는 게 아니라

그냥 조용한 가운데 바라보고만 싶은 기분.


그렇게 학창시절이 끝났다.


물론 교사가 됐기 때문에 인솔교사로서 현장체험학습을 자주 나간다. 특히 특수학급끼리 체험학습은 더 자주 있다. 하지만 학창시절 와글와글했던 그 체험학습이 아니라, 내가 기획하고 알차게 꾸린 소규모 체험학습이라 오히려 덜 힘들다. 학생 최소 5명 남짓(특수학급 규모가 큰 곳이어도 15명 남짓), 인솔교사 2-3명 남짓 함께 가는데 교사 당 인솔해야 하는 학생 인원도 적어서 복잡하지 않다. 체험학습 장소도 너무 인파가 몰리는 곳보다는 평일에 조금 한산한 공원이나 예약된 인원수만 받아 교육활동을 진행하는 장소로 주로 정한다. 학생은 적고 인솔교사는 그에 비해 많으니 소외되거나 무리에서 이탈하는 학생도 없다. 세심한 보살핌과 배려 안에서 체험학습이 이루어진다. 학생들 한 명 한 명 온전히 참여하며 모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물론 다녀오면 힘들긴 하다. 하지만 마음은 충만하고 보람있다. 진짜 '교육적 효과가 있는 체험학습을 다녀왔구나'하는 뿌듯함. '오늘도 내 역할을 제대로 했다.'는 교사로서의 소명 의식도.


하지만 특수학급 체험학습이 아닌, 학교 전체 체험학습을 인솔해야 할 때는 나도 울며 겨자먹기로 간다. 대형 테마파크로 주로 가는데 이렇게 많은 학생들을 이렇게 넓은 곳에 그냥 풀어(?) 놓으니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특수학급 학생들은 내가 챙겨서 다니지만, 엄청난 인파를 뚫고 놀이기구를 타는 게 다인 테마파크는 내가 제대로 계획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어서 너무 힘들다. 그나마 특수학급 학생들은 우리들끼리는 소외되지 않고 함께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특수학급 학생은 아니지만.. 반마다 조금 소외되고 은근히 따돌림 당하는 것 같은 친구들이 있는데, 교실에서도 외로워 보였던 그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나오니 더 외롭고 초라해 보인다. 저렇게 혼자 겉돌다가 이탈해도 아무도 모르려나.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도 된다.


최근 학교 현장체험학습과 관련된 안타까운 사고로 많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중단했다. 물론 안타까운 사고로 중단이 되어 마음은 너무 아프지만, 언젠가는 중단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 1인이 몇십 명을 인솔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형태의 체험학습, 선생님이 학생 한 명 한 명을 살필 수 없는 상황에 평소 소외되던 아이들이 더 우울해지는 체험학습, 평소 학교에서도 즐겁게 지내던 소위 '인싸'인 친구들만 신나는 체험학습, 솔직히 교육과정과 연계성이 전혀 없어보이는 형태의 체험학습. 이제 그만 가도 되지 않을까.


반면 우리 특수학급 현장체험학습같은 형태의 체험학습은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반학생의 학부모이자 특수학급 담임으로서, 우리 딸의 학교단위 체험학습은 없어졌으면 좋겠고, 내가 맡은 특수학급은 꾸준히 '우리끼리' 체험학습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학생 4-5명당 교사 1인이 인솔할 수 있는, 평소 수업내용과 연계할 수 있는 알찬 체험학습이어야.. 인싸였든 아싸였든 모든 학생들이 소외되지 않고 즐겁게 다녀올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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