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감량을 위한 저칼로리 다이어트는 하지 말 걸
하루 1500kcal만 먹기, 45kg 만들기.
20대 중반부터 거의 10년간, 내 다이어리에 적혀 있었던 문구였다.
스물다섯 살 때 그룹필라테스 레슨을 받은 적 있었다. 그때 필라테스 선생님은 체중감량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섭취 칼로리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매일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총 몇 칼로리를 먹은건지 검사를 받았다. 내가 몸집이 작으므로 1500kcal만 먹어야 체중감량이 된다고 하셨다. 그 때 시작된 것이 저칼로리 다이어트이다. 처음엔 체중이 정말 빨리 감소했다. 그룹필라테스를 받은 지 세 달 만에 5kg이 빠졌다. 그렇게 45kg이 되자 당시 유행하던 스키니진이 예쁘게 어울렸다. 그 때 생각했다. 아, 나는 45kg일 때가 가장 예쁘구나. 그리고 이 몸무게로 살려면 매일 1500kcal만 먹어야 하는구나.
나날이 예뻐지는 느낌에 처음 저칼로리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평생 나의 의지대로 식욕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던 치킨, 빵, 아이스크림, 초콜릿... 당장 못 먹으면 어때. 나는 먹는것보다 날씬한게 좋아.
하지만 6개월이 넘어가자 의지만으로 식욕을 통제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별 약속이 없는 평범한 날에는 1500kcal만 먹었지만, 외식을 하는 날에는 이성을 잃고 많이 먹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입이 터지는 날.
처음에는 이렇게 외식이 있는 날에만 입이 터지다가, 점점 별다른 이벤트가 없어도 입이 터지기 시작했다.
입이 터진 다음날에는 죄책감에 1500kcal가 아닌 1000kcal 혹은 그 이하로 줄여 먹다가 또 입이 터졌다.
게다가 칼로리만 신경쓰다보니 음식의 종류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냥 칼로리만 잘 맞추면.. 살이 찌지 않겠지. 라는 위험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케이크가 먹고 싶은 날엔, 케이크로 1000kcal정도를 맞추고, 남은 두 끼는 토마토나 오이만 먹거나 굶었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부터 너무 배가 고파서 또 입이 터지곤 했다.
같은 1500kcal여도, 세 끼 조금씩 밥을 먹을 때보다, 간식류로 1500kcal만 먹을때 훨씬 더 허기지고 힘이 없었다. 신경도 날카로워지기 일쑤였다.
저칼로리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원래 나는 식탐이 별로 없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어도 적당히 먹다가 질려서 내려놓기 일쑤였고, 외식할 때에도 많이 못 먹고 숟가락을 가장 빨리 내려놓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1500kcal라는 심리적 제한이 생기자 오히려 점점 식탐을 부렸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데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어떤 계기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으면 멈출 수 없었다. 이전에는 베스킨라빈스에서 싱글컵 한 컵만 먹으면 더이상 먹고싶지 않았는데, 이제 부족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날 파인트 채로 포장해 와서 혼자 허겁지겁 먹어치우곤 했다. 다 먹고 나면 배가 찢어질 듯 아팠다. 내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나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식탐이 많아졌지?
아이스크림 뿐 아니라 케이크도, 치킨도, 빵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먹지 못하고, 허겁지겁 엄청난 양을 먹어치웠다. 이렇게 식탐부리는 모습이 창피하여 혼자 있는 시간에. 몰래 숨어서. 그렇게 폭식을 했다. 그리고 살이 찔 것 같아 한동안은 극도로 적게 먹었다.
임신기간을 제외하고 거의 10년 가까이 폭식과 절식을 반복하는 동안, 나의 면역력은 소리 없이 망가졌다.
그러다가 서른다섯 되던 해 봄, 왼쪽 눈을 중심으로 대상포진을 앓았다. 그 과정에서 실명 위기까지 갔다가 간신히 회복했다. 참 아프고 힘들었다.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환자분은 어릴 때 수두에 걸리는 바람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순간 대상포진에 걸리는 것이지요.
앞으로도 면역력이 떨어질 때 또 걸릴 수도 있어요."
이럴 수가. 끔찍한 대상포진에 또 걸릴 수 있다니. 정말 힘들고 아팠는데! 절대 안 될 말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씬하고 예쁜 몸이 아니었다.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는 면역력이 높은 건강한 몸이었다.
"의사선생님, 면역력은 어떻게 높일 수 있어요?"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해야죠.
매 끼 골고루 풍부한 영양소를 갖춰 적당량 드세요.
그리고 더 나이 들기 전에 근육량을 늘리셔야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럴 수가, 듣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말들이다. 초등학생들도 알 만한 상식.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들을 무시하고, 마른 몸을 만들기 위해 정말 오랫동안 뻘짓을 하고 있었네.
뻘짓의 대가는 참 혹독하구나.
이제 날씬하고 예쁜 몸이 아니라 면역력을 갖춘 건강한 몸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리 옷 핏이 예쁘면 뭐하나. 몸이 아프면 그렇게 예쁘게 입고 나들이도 못 나가는데.
그날부터 하루 세 끼를 모두 영양가 있게 챙겨 먹었다.
밥 2/3공기, 채소와 고기 반찬들 3-4가지정도를 충분히 배부를때까지 먹었다.
밀가루음식을 피했다. 피한 이유가 '살이 찔까봐'피한 것이 아니었다. 흰밀가루가 많이 포함된 음식들은 그만큼 영양소가 결핍돼 있어서 피했다.
이렇게 먹으니 처음 한 달 동안은 살이 조금 오르는 느낌이었다.
저칼로리 다이어트를 할 때 45kg은 유지했지만 그 대가로 늘 허기가 졌다. 머릿속에 음식 생각이 수시로 났다. 그런데 영양가 있게 충분히 먹으니 4kg정도가 쪘지만 허기를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먹고 싶던 빵, 치킨, 과자, 아이스크림 생각이 조금도 나지 않았다.
세 끼 밥을 충분히 먹으니 늘 포만감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거의 10년만에 느끼는 포만감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여유를 가져왔다.
점점 포만감을 느끼자 먹는 양도 내 체형에 맞게 조금씩 줄었다. 다시 2kg정도가 빠졌다.
저칼로리 다이어트할 때는 매일 아침 몸무게를 쟀는데, 이제 집에 체중계를 없애고 한 달에 한 번 아파트 헬스장에서 인바디검사를 하곤 한다. 매 달 재는 몸무게는 47-48kg, 체지방량은 24-25%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따로 신경써 관리하지 않아도 그렇다. 잘 먹고 포만감을 느끼자 기운이 났다.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왕 하는 거 유산소 위주의 체지방 감량 운동이 아니라, 다이어트와 날씬한 몸이라는 키워드가 완전히 배제된, 단순히 '근육량을 늘리는 운동'
여러 운동프로그램을 찾다가 '핑크힙 응비'라는 유튜브 채널을 알게 왰다. 50분 고강도 근력운동 루틴이었고, 우리 몸에서 가장 근력을 많이 키울 수 있는 부위(엉덩이, 등, 어깨) 위주로 짜여져 있었다. 주 3회 50분씩 그 프로그램으로 고강도 근력운동을 했다. 유산소운동들처럼 숨이 많이 차는 운동은 아니었다. 덤벨과 힙밴드를 사용해 특정 근육에 힘을 줘서 다음 날 뻐근한 근육통이 느껴지는 운동이었다. 꾸준히 하다 보니 팔, 복근, 엉덩이가 탄탄해지는 기분이었다. 저칼로리다이어트 할 때처럼 급격하게 얇아진 것이 아닌데도 탄탄하게 모양이 잡히니 옷 핏이 되살아났다. 다이어트로 45kg일 때보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탄탄한 지금 48kg의 몸이 더 보기 좋다.
저칼로리 다이어트를 할 땐 피부에 각질도 많고 머리카락도 푸석했는데, 잘 먹고 운동하니 피부도 머릿결도 좋아졌다. 저칼로리 다이어트하던 20대보다, 오히려 지금 더 생기 있어 보인다.
가장 예쁠 수 있었던 그 시기에 저칼로리다이어트로 건강을 해친 것이 참 후회된다.
다이어트는 단기간 적게 먹는 것이 아니라,
영양가 있게 골고루 적당히 먹고,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정말 진부하고 당연한,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그게 다이어트의 기본이다.
다이어트도 기본에 충실해서 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의 몸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더욱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기본이 지루하고 지지부진하다고 해서 절대 건너뛰면 안 된다.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저칼로리 다이어트 했던 것을 뼈져리게 후회하지만, 후회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앞으로도 골고루 먹고, 꾸준히 근력운동을 해서 지금 건강을 유지하면
예쁜 아가씨는 물론 못 돼도,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고 생기발랄해서 함께하면 즐거운 아줌마나 할머니는 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