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서적 말고, 나와 우리 아이를 보며 육아할 걸
- 아기에게 그 어떤 분유보다 좋은 것이 모유다. 모유는 엄마가 주는 사랑이다. 최대한 오래 '완모'해야 한다.
- 아기는 잘 자고 잘 먹어야 한다. 월령에 따른 적합 수면 시간은 .....
- 유기농 식재료를 다음어 엄마표 이유식을 맛있게 만들자. 아이가 양질의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도록.
- 아기는 다양한 인물, 환경에 노출돼야 한다. 그래야 고루 발달한다.
- 아이에게 읽혀야 할 그림책 리스트 ............
- 아이에게 유익한 교구 리스트 .............
임신했을 때부터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까지 정말 많은 육아 서적을 읽었다. 육아 서적에는 저런 메시지가 가득했다.
엄마가 돼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한 대로 착착 실천하면 모두 평균 이상은 할 줄 알았다. 나는 그래왔으니까. 딱히 머리가 비상하거나 손재주가 좋지 않았어도 특유의 성실성으로 '열공'한 것을 잘 실천하며 살았으니까. 그 결과 내신, 수능성적도 학점도 평균 이상이었고, 사회적 평판이 나쁘지 않은 특수교사라는 직업도 가지고, 특수교사로서 학생 지도도 그럭저럭 해냈으니까.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면 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 노릇은, 이제까지 내가 해온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성실한 계획과 실천 그 모든 것이 무참히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임신했을 때 육아서적에서 접한 모유란, 그 어떤 분유보다 건강하고, 헌신적인 것이었다. 아기가 모유를 제대로 먹지 않으면 면역력이 충분히 생기지 않을 것만 같고, 두뇌발달에도 필수적이고,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나는 최대한 오래 '완모'하기로 다짐했다. 출산 전부터 모유수유 강의를 듣고, 산후조리원 모유마사지를 예약하기도 했다. 이 정도 준비하면 완모는 문제 없겠지.
하지만 모유는 내가 마음먹은 만큼 펑펑 나오지 않았다.
책에서 본 대로, 출산 후 바로 젖을 물렸다. 몸 여기저기 안 아픈곳이 없는 상태에서 아기가 보챌 때마다 젖을 물렸다. 젖이 잘 나오라고 억지로 미역국도 많이 먹고 물도 많이 마셨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산모들에 비해 모유량이 적었다(그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난 분명 하란대로 열심히 했는데). 젖을 물리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또 배고파 우는 일이 많았다.
적은 모유량에 그렇게 자주 젖을 물려도 역부족이었는지 3.1kg로 태어난 우리 딸은 100일에 5.5kg밖에 되지 않았다(보통 생후 100일에는 출생 시 몸무게의 2배가 됨). 모유수유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니 분유를 먹이게 됐다. 분유를 먹이자 딸아이는 수유텀이 길어졌다. 완모는 아니더라도 이렇게라도 해야겠다.. 타협할 즈음, 평소보다 분유를 많이 먹어 수유텀을 조금 오래 가졌더니 그날 밤 바로 젖몸살이 왔다. 출산의 고통보다 더한 젖몸살의 고통..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유방을 감싸고 엉엉 울며 응급실로 향했다. 인턴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 의사들이 내 유방을 살펴보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옷을 풀어해친 채 미친 여자처럼 엉엉 울며 난리를 쳤다. 그렇게 완모의 꿈은 멀어지고, 우리 딸은 모유보다 분유를 더 많이 먹다가 간신히 돌이 지났다.
완모는 못 했지만 엄마표 이유식은 정말 잘 해봐야지.
이전에는 관심도 없던 집 앞 한살림 매장에서 회원가입을 한 후, 야심차게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단계별로 재료도 양도 손질법도 딱딱 성실하게 지켰다. 하지만 모유든 분유든 양도 적고 입이 짧던 우리 딸아이는 이유식 일주일차에 분수토를 하더니 주기적으로 분수토를 했다. 열심히 만들어 바친 이유식은 2-3숟가락 먹고 고개를 돌리거나 숟가락을 쳐내기 일쑤였다. 나의 돈과 정성이 갈아들어간 이유식은 처참히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나의 마음과 함께.
가끔 길게 외출하거나 여행갈 때만 활용했던 시판 이유식들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게 됐다. 내가 만든 이유식이나 시판 이유식이나 비슷하게 잘 안먹긴 했지만.. 엄마표 이유식에 대한 나의 열정은 정말 많이 사그라들었다. 양질의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들면 뭐하나, 거기 들어 있는 좋은 것의 십분의 일도 섭취하기 싫다고 거부하는 우리 딸인데. 그렇게 이유식을 다 먹고 유아식을 거쳐 나랑 같은 밥을 먹을 때까지. 처음에는 하루에도 몇 번식 찾던 한살림 매장에 점점 발길이 뜸해지다가 결국 뚝 끊었다. 이젠 한살림에서 오는 홍보, 안내 문자까지 차단해 버렸다.
먹는 건 내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네. 그래서인지 키도 몸무게도 평균 이하였다.
소아과 의사선생님 왈, 정상 범위에만 속하면 크게 신경쓰지 말라고 하시니.. 어느 정도 포기했다. 하지만.. 다른 발달 영역들은 내 노력으로 잘 할 수 있겠지.
신체 발달 영역 말고 인지, 사회성, 언어발달영역. 어느 육아서적에 보니 아기가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고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보고 듣는 것이 많아져 발달이 촉진된다고 한다. 그래. 문화센터 수업에 다니고, 또래 아기엄마들과 친해져서 키즈카페에도 가고 다른 집도 많이 방문해보자.
하지만 우리 딸은 나처럼 내성적이고 예민한 아이였다. 집에 나랑 둘이 있으면 방긋방긋 잘 웃고 잘 돌아다니며 놀던 딸은 밖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울면서 나한테만 매달렸다. 새로운 장난감을 만지며 신나게 노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한테만 치대는 아이가 버겁고 짜증났다. 밖에서 참고 참다가 집에 돌아오면 짜증을 내며 딸아이와 함께 울곤 했다. 너는 왜 이렇게 내가 노력하는 만큼 안 따라주는거야.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하는데. 너 하나 잘 키우려고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실천하려고 하는데. 설렁설렁 되는 대로 하는 다른 엄마네 아기들은 잘만 먹고 잘만 노는데, 왜 너는 이렇게 유난이야. 왜!!
육아서적에서 추천했던 값비싼 그림책들도, 가베 세트도 무용지물이 됐다. 오히려 도서관 아기책방에서 어쩌다 잡은 90년대쯤에 출판된 조악하고 너덜너덜한 그림책을 열심히 보는 우리 딸. 장난감 말고 집에서 굴러다니던 도시락통이나 텀블러, 내 가방에 달려 있던 키링 등을 더 적극적으로 가지고 노는 우리 딸- 다양한 형태로 역할놀이를 해야 하는데.. 맨날 물감으로 주스를 만들거나 클레이로 도너츠를 만들어 엄마한테 대접하는 역할놀이만 고집하는 우리 딸!!!!!
영유아 시기에 잠은 10시간 이상 자야 한다는데 우리 딸은 내가 아무리 수면 환경을 만들고 별 짓을 다 해도 8-9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낮잠 시간을 합쳐도.. 낮잠을 안 자기 시작한 5살 때도. 재우는데 안 잔다고 자꾸 일어나는 딸아이가 너무 미웠다. 다 너를 위해서인데. 왜 안 따라 주는거야.
그렇게 내가 공부하고 노력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며 타협할 즈음, 딸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했다. 딸아이는 유치원에서도 처음엔 가만히 앉아있거나 울기만 하더니 자기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를 만나자 단짝이 돼서 또 비슷한 놀이만 하며 놀았다. 그렇게 한 명씩 친구가 늘어났고, 한 가지 씩 좋아하는 활동이 늘어났다. 아기일 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더니, 때가 되니 저절로 아이는 자랐다. 제 나름의 속도로, 방향으로. 5살 이전에는 매일매일 유난스럽고 예민한 딸아이 걱정만 하다가, 5살 이후 다 내려놓고 되는대로 해버렸다. 그런데 딸아이는 더 잘 자랐다. 그래서 차츰 깨달았다.
육아 서적을 열심히 공부하는 대신 우리 딸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살펴볼 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성찰해볼 걸. 모유가 적으면 젖몸살이 안 오도록 제대로 단유를 하고 행복하게 분유를 먹일 걸.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인데 한살림에서 식재료를 고민할 생각에 여러 브랜드의 시판 이유식을 비교해보고 맞는 것을 고를 걸. 어설프게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거나 추천받은 교재교구를 들여놓지 말고, 집 안에서 아이와 나 단 둘이어도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나 실컷 할 걸. 다그치고 우는 대신 함께 웃고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할 걸. 잘 자면 잘 자는대로, 잘 못 자면 그런 대로 쉬엄쉬엄 놀며 편하게 시간을 보낼 걸.
이제 초등학생이 된 우리 딸. 여전히 편식이 심하고 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키가 작고 말랐다. 선생님이 질문하실 때 시키기 전에 먼저 손들어 대답하는 법이 없으며 반장선거는 앞으로 어른이 될 때까지 절대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또래들에 비해 크게 명석하지도, 독서나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난 '머리가 좋아지는 아이 식단', '잘 먹고 잘 자는 아이 키우기', '리더십 있는 아이로 키우기', '스스로 공부하게 만든 강남 엄마들의 -가지 비법'같은 육아서적을 열심히 읽지 않는다. (특정 육아서적의 제목을 지칭하는 게 아니고, 저런 메시지를 담은 책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한 것). 읽어도 그냥 참고만 하거나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무리되지 않게 실천한다. 열심히 무리해서 실천하는 대신, 그럴 시간에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귀 기울여 듣고,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교과서를 함께 읽어보기만 한다. 집 앞 맛있는 반찬가게를 발견해 좋아하고, 가끔 쿠팡크레시로도 어린이 반찬들을 주문한다. 그리고 워킹맘으로서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면.. 나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허브차를 마시며 일기를 쓰거나 가벼운 에세이를 읽으며 쉰다. 육아에 있어서 꼭 따라야 할 정석은 없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서 지난 시간이 후회되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딸이 어떤 아이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우선적으로 살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