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거리두기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귤 한 박스를 구매한다. 껍질은 물과 함께 끓여먹기 위해서 꼭 제주도 노지 감귤을 선택한다. 박스를 열어서 귤의 껍질을 만져본다. 껍질이 얇고 부드럽다. 껍질에 약품처리나 코딩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빨리 상할 수 있다. 귤들을 일일이 끄집어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떼어 놓는다. 귤껍질이 맞닿으면 짓물러지고 하얀 곰팡이가 피기 때문에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코로나 시국처럼 귤들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주황빛 열을 맞춘 귤들을 보면서 비단 귤만이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가족들 간에도 적당한거리두기가 필요하고 느낀다. 너무 가까운 거리는 서로 간에 생채기가 나고 곪을 수 있다.
치매 엄마가 아프면서부터 가족 간의 피로도도 증가하게 됐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엄마를 돌봐야 하는 것에 피곤함을 토로한다.
“주말에는 네가 좀 데려 가서 엄마 모셔라. 나도 아침을 차려주고, 기저귀기도 채우려니 힘들어서 못 하겠다.”
주말에는 아버지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런 사정으로 주말에는 꼭 나의 집으로 엄마를 모셔왔다.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먹는 것에만 집착을 하고 새벽녘에 깨서 실금을 하고, 목욕을 거부하기 때문에 어르고 달래여만 한다.
남동생은 주말마다 들러 엄마에게 점심을 대접한다. 나를 만날 때마다 누나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한다. 없다고 해도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빨래든 뭐든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이 난 것이 부모님 댁의 이불이었다. 삼복더위에도 겨울 이불을 덥고 계셨다. 몇 달 전에 빨래방에서 돌기는 했으나 빨 때가 됐다. 넌지시 이불 빨래를 해야 된다고 했다. 부모님 댁에는 건조기가 없기 때문에 빨리 말릴 수가 없다. 남동생은 그 말을 기억하고 건조기가 있는 자신의 집에 이불 빨래를 맡기라고 했다. 올케한테도 다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불편하게 뭣하라고 그래. 돈 만원 하면 빨래방에서 금방 할 수 있는데.. .. . 빨래방에서 할게.”
누나의 고생이 안쓰러웠던 남동생은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고집을 부리며 자신의 집에 가자고 했다. 부모님이 덮던 요와 이불을 보자기에 쌓다. 네 채나 됐다. 남동생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동생네에 도착은 했으나 올케는 이불을 내려놓자 말자 안색이 좋지 않다.
“여름 빨래도 아니고 서너 시간은 걸려요. 이렇게 갑자기 오면... .. .”
빨래방처럼 한꺼번에 돌릴 수 있는 크기가 아니라서 한 채씩 한 채씩 돌려만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무던했던 올케는 한마디 한다. 시집와서 여태껏 쌓였던 감정들도 토로한다. 엄마와 앉아있던 나는 불편해서 과일을 먹다 자리에서 일어서고 만다. 빨래가 다 되면 동생 편에 보내달라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남동생은 중간에서 좌불안석이다. 애초에 빨래를 들고 올케네 집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간 것이 잘못이었다. 빨래방에 맡기면 눈치도 안 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괜히 서로 번거롭게 되었다. 선의로 제안했던 남동생도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가지런히 줄을 맞춘 귤들을 바라본다. 1cm의 떼어내기가 귤들을 건강하게 보관하는 법이다. 조그마한 간격이 중요하다. 서로 살을 부대끼고 맞대면 상처가 곪는다.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프면 더 곪기 싶다. 사소한 일로 충돌하기 쉽고, 피로도도 올라간다. 귤처럼 조그마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 간에 숨통을 틜 수 있다. 엄마의 병은 장기전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간격을 두면서 오래도록 돌봐야 할 것이다. 거리두기가 가족의 건강도 지키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