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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l 28. 2021

그리운 이름 외갓집

외갓집에 대한 정서


 아흔 넘게 사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에겐 외갓집이 사라졌다. 물론 외갓집은 그 자리에 건재하다. 양옥으로 개조된 그곳에 정년퇴직을 한 점점 외할아버지를 닮아가는 외삼촌이 거주한다. 하지만 그 집은 의미가 퇴색됐다. 명절에 엄마조차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장수하신 외할머니를 외숙모가 구박 아닌 구박을 해 관계가 소원해진 탓이다.

 

 안채에는 안방과 작은방이 연결돼 있었으며 윤기 나던 툇마루를 빼놓을 수 없다.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외갓집 툇마루에 앉아 야단스러운 빛깔의 나리꽃을 바라다보고 산속의 군부대로 지프차가 아련히 달리는 소리와 집 앞의 활기찬 시냇물 소리, 그리고 각종 주전부리를 툇마루에 앉아서 먹었었다. 주전부리는 찐 옥수수, 찐 고구마, 사카린을 넣은 달짝지근한 호박죽 등이었다. 동네 유일하게 있던 공판장에 과자를 사러 갈 엄두를 감히 내지 못했다. 공판장 아들이 바보라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를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항상 툇마루는 바지런한 할머니의 성정만큼 반질 반질거렸다.

 

 안방의 뒤 문을 열면 감나무들이 턱 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유독 감나무가 많았다. 작대기로 익은 감을 따던 기억, 땅바닥에 철퍼덕 난감하게 떨어지던 아찔함. 안방은 넓지는 않았으나 군불과 흙벽으로 따뜻하고 엄마의 자궁처럼 포근했다. 문풍지는 성한 날보다 성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웃풍이 심해 할머니의 허리끈을 문고리에 묶고 밤새도록 허리끈을 잡고 잤던 일도 있었다.


 작은방은 보물창고였다. 제사를 지낸 음식들과 농사를 지은 수확물이 가득한 곳간 같은 곳이었다. 허리가 굽은 외할머니가 어느 날은 곶감을, 어느 날은 팥죽을 끓이기 위해 팥을, 어느 날은 알사탕을 꺼내오시곤 했다. 그리고 시렁엔 메주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해마다 우리 집에 메주를 보내주셔서 엄만 날 좋은 날 장을 담그셨다. 메주가 묵직하다는 걸 깨달은 건 할머니 돌아가시고 밍밍한 장을 사 먹을 때부터였다.


 아랫채는 외양간과 붙어있었으며 주로 외할아버지가 그곳에서 혼자서 주무시곤 하셨다. 이른 아침에 소에게 뜨거운 김이 나는 여물을 주셨다. 오래간만에 보면 소는 훌쩍 커 있었다. 아랫채 맞은편엔 푸세식 화장실과 거름을 넣어두는 창고가 있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반찬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특히 근처 양계장에서 양동이 가득 사온 알 굵은 달걀은 손자들을 위한 특별한 찬이 었다. 달걀은 기름이 두르지 않고 늘 밥을 하는 가마솥에 넣어 쪄주셨다. 밥풀이 그릇 밑에 묻어 있어야만 진정한 달걀찜이었다. 할머니는 석유풍로를 낯설어했다. 할머니의 가마솥뚜껑 여는 소리는 늘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고슬고슬한 밥과 누룽지, 찐 우엉 잎사귀 등. 외할머니의 위엄은 가마솥뚜껑이 둔탁하게 열리는 소리에서 시작됐다. 김치 맛도 잊을 수가 없다. 젓갈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장독 속의 배추김치와 깍두기, 동치미는 청량함이 생명이었다. 그 아삭거림이란. 

  TV도 없는 시골에서의 하루는 무료했다. 라디오 연속극을 툇마루에 누워 듣기도 하고 이모들이 보던 학원 잡지를 들춰보아도 하루는 더디기만 했다. 밭에 나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좀처럼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방학이라 외갓집에 같이 머물고 있던 또래의 외사촌과 각자의 집에 돌아가자며 무작정 길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오래된 정자나무를 지나고, 동네 아이가 빠져 죽었다는 다소 두렵게 느껴지던 저수지를 지나고, 빈 논두렁을 지나 30분은 족히 걸어야 했다. 새가슴으로 걷고 있는데 구원의 손길처럼 예배당 종소리가 들려왔다. 정류장에 임박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뒷목덜미에 앙칼지게 들려오는 이모의 목소리. 우리의 계획은 허탈하게 무산되고 말았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이모에게 된통 혼났다.


 흙집과 쇠똥 냄새와 가마솥 아궁이, 바리바리 싸주던 보따리가 휴가철이나 명절 때는 그려진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골 정서가 사라졌다. 돈을 모은다면 인생 말년에 한옥으로 지은 게스트 하우스를 해볼까나. 꿈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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