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거나 건강하거나
아침밥을 먹고 나서 후텁지근하게 더워서 공원 벤치에 앉아서 남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당 봉고 차를 타고 한 무리들의 할머니들이 빠져나오고 나선 벤치는 조용하다. 바람이 솔솔 불어서 시원했다. 엄마는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산책 겸 벤치에 앉으신다. 다리가 가르다란 게 아파 보이는 얼굴이었다. 독거노인이다.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엄마와 비슷한 점이 많다. 나이도 엄마와 같은 닭띠이고, 요양등급 4등급을 받은 것도 같으며, 아들이 공무원인 점도 같다.
몸무게가 38Kg이 나가며 예전에 암수술도 받았고 지금은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요양보호사도 집에 왔다 갔다 하고 병원에도 다니시는 모양이다. 1남 3녀를 키우셨고 아들은 그나마 잘하는 편이나 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한 명은 미국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서울에, 가까이 살았던 딸도 피곤하다며 멀리 이사를 갔다고 하신다.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잘 오지도 않고,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한 번 오면 미안해서 차비 명목으로 몇 십만 원씩 쥐어준다고 하셨다. 딸네 집에 가면 불편하다고도 하셨다.
"얼마나 깔끔을 떠는지 밥 한 톨 떨어져도 쓸고 닦고 난리가 아니야. 저번에 복숭아 두 박스가 선물로 들어와서 혼자 먹기 그래서 져가라고 전화했더니 그거 얼마 안 한다고 남으면 버리라는 거야. 말을 얼마나 정 떨어지게 하는지. 오늘도 맛있는 소피국이 있어서 딸과 사위 먹이려고 전화를 했더니 도통 전화를 안 받네. 주말에 어디 놀러 다닌다고 바쁜 모양이야."
할머니가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도착해서 용연사 부근에서 묵밥을 먹었다. 시간을 보낼 겸 반송리 마을 정자에 앉아서 쉬어가기로 했다. 할머니 한 분이 정자에 앉아서 감자를 까고 계셨다.
"여기 앉아도 돼요?"
"그럼 되고 말고. 올라와요. 감자가 작아서 누구라도 오며 주려는데 아무도 안 오네. 좀 가져갈래요."
검은 비닐봉지에다 초면인 우리들에게 담아주신다.
감자알이 작다고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껍질을 깎아서 주신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소쿠리를 든 할머니가 정자에 앉으신다. 완두콩을 까서 울산에 있는 아들 내에 택배로 보내주신다고 열심히 손을 움직이신다. 정자는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인 것 같다. 또 다른 할머니 두 분이 연이어 오시고 감자를 가져가라는 둥 올림픽 이야기를 하시며 수다를 떠신다. 전부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들인데 정정하시다. 여든의 나이에도 일손을 놓지 않고, 이웃 간에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터놓고 지내는 것이 건강의 비결인 것 같다. 낯선 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미안해서 일어서려고 하니 비녀를 꽂은 할머니가 그러신다.
"날도 더운데 더 놀다 가요."
초면에 이렇게 정겹게 대하는 것이 시골인심일까. 텃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엄마도 저들 틈에 끼여서 감자도 까고 콩도 까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딸 흉이라도 좋다. 그러나 금방 점심을 먹은 엄마는 챙겨 온 빵밖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착을 한다. 무더운 여름의 오후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