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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Feb 28. 2024

엄마가 인공눈물을 씹고 있었다

엄마가 치매에 걸린 지도 3~4년이 돼 간다. 약을 복용해도 점점 더 증상은 나빠진다. 단어를 잊어버렸는지 말수도 줄고, 앵무새처럼 앞의 사람 말을 따라 한다. 멍하게 앉아 있거나 조는 것이 대부분이다. 저녁에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가 차량에서 내려 주면서 말한다.

 "그래도 오늘은 몇 마디 했어요?"

 원래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인지기능이 점점 나빠지다 보니 뱉을 수 단어들이 줄어든 것뿐이다. 수면을 취하고 난 아침 무렵에는 곧잘 말을 하는 걸 요양보호사는 세세하게 모를 것이다.  '사과'를 한참 들여다 보고 '사과'라고 말하지 못하고, '딸기'를 보고도  '딸기'라 말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어쩌다 이렇게 되나 싶어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착한 치매라 많이 설치거나 밖으로 함부로 나가려 하지는 않는다. 좁은 집안에서도 길을 잊어버려 신발을 신으러 현관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다. 손을 잡고 방향을 일러주어야 했다.

 기저귀를 항상 착용하며 외출 시에는 늘 여분의 기저귀, 물티슈, 바지를 준비해 다닌다. 엄마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아기가 돼 가고 있다. 바지도 입혀 주고,  잠바도 입혀주어야 한다. 엄마도 어린 시절 나를 이렇게 키워주셨을 것이다. 애를 키워 본 적 없는 미혼의 난 새삼 엄마의 노고를 되새긴다.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고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일전에 엄마를 돌본다고 지쳐서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침대 모서리에 구슬픈 표정으로 앉아 있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엄마의 볼을 쓰다듬으며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니 본인도 불안할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가족의 사랑이 중요하다. 일부러 스킨십도 하고, 예쁘다는 말도 자주 한다. 그런 탓인지 엄마는 감정 표현으로 잘 못하지만 늘 웃으신다.

 어느 날은 토마토를 후식으로 주었는데 자꾸 오른손에 토마토즙을 묻혔다. 그래서 휴지 한 칸을 집어주었다. 휴지를 건네준 걸 깜빡하고 양치하러 데려갔더니 뭔가를 엄마는 계속 씹고 있었다. 썬 토마토를 그렇게 오래 씹을 리는 없어 입안을 손가락을 넣어보니 하얀 휴지를 씹고 있었다. 나의 불찰이었다. 좀 더 꼼꼼하게 엄마 옆에서 지켜보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삼키지 않아 다행이었고, 다른 물건이면 큰일 날 뻔했다.

 사흘 전에는 식탁에 앉아서 저녁 약 복용을 도와드렸다.  난 급하게 설거지를 마무리했다. 젖은 손을 닦는데 엄마는 뭔가를 씹고 있었다. 최근에 눈이 따가워 처방받은 인공눈물 두 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인공눈물 두 개를 쮸쮸바 아이스크림처럼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얼른 입안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뺐다. 그리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모시기 힘들다고 해 내 집에 온 지도 1년이 넘어간다. 처음 왔을 땐 간혹 대, 소변 실수는 했으나 기저귀는 차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똥을 싸도, 오줌을 싸도 반응이 없다. 냄새를 맡고 갈아줄 수밖에 없다. 올해 장기요양등급 2급을 받은 엄마는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저녁에 내가 돌본다. 언제까지 이 생활이 유지될지도 걱정된다. 더 나빠져 요양병원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럼, 엄마의 기저귀 케어도 낯선 이의 사무적인 손길이 기다릴 것이다. 엄마는 더 불안해할 것이다.

 "엄마는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백 번을 물어도 암마는 대답은 전담으로 돌보는 맏딸보다는 아들이 좋단다. 그래도 난 서운하지 않다. 엄마가 옆에 있어 행복하고 내가 돌볼 수 있는 상황이라 감사한다. 

 봄 햇살이 좋은 날에 엄마를 데리고 노란 유채꽃이 핀 제주도를 다녀와야겠다. 평생 식당이며, 음식 장사며 여행을 다녀보지 못한 엄마는 비행기 타 볼 기회가 없다. 좀 더 일찍 모시고 왔더라면 유채꽃에 함박웃음 짓고, 파도소리에 반색했을텐테. 그래도 멍한 눈빛으로 제주도 바닷가에 앉아 있어도 엄마의 눈동자는 분명 기뻐할 것이다. "호호호" 거리며 감정표현을 못해도 기쁨의 웃음이리라. 다가오는 봄이 있어 좋고, 똥순이 우리 엄마가 걷을 수 있고 웃을 수 있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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