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터지기 전이었다. 주말에 엄마와 대중탕을 가기 위해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버스에서 내리자 엄마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내가 다정하게 불러도 엄마는 넋이 나간 표정이다.
“우리 어디 가기로 했지?”
엄마는 챙겨온 비닐봉지를 풀어보면서 물었다. 손가락이 심하게 떨렸다. 안에는 수건과 샴푸, 비누 등의 목욕용품을 들어있었다. 분명히 엄마가 손수 챙겼을 텐데도 잊어버린 듯하다. 목욕탕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엄마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신이 단기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했다. 동생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려는 걸 간신히 만무했다. 엄마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벌어진 입,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엄마의 머릿속에 새긴 블랙홀을 떠올려본다. 갑자기 생긴 블랙홀을 본인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리라. 나는 엄마의 떨리는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엄마, 나도 한 번씩 잊어버려. 별 거 아니야.”
애써 엄마를 위로했다. 그 후에 엄마는 인지장애 진단을 받고 급속도로 상태는 나빠져 치매진단까지 받게 됐다. 치매 약을 꾸준하게 복용했으나 엄마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고집이 세져 씻는 걸 거부하고, 음식에 집착해 주간보호센터의 간식 창고를 뒤지기도 했으며, 주간보호센터 어르신과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급기야 대·소변 실수를 하자 아버지는 힘들다며 요양원에 보내자고 했다. 나는 자식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엄마를 낯선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혼인 내가 엄마를 데려와 내 집에서 모시게 됐다. 엄마는 딸의 보살핌 아래 주간보호센터를 다니며 평온한 상태가 유지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대·소변 실수가 잦아져 기저귀를 차게 됐고, 본인 이름도 못 쓰고, 말수도 줄어들어 거의 내 말만 앵무새처럼 따라 하게 됐다.
며칠 전에는 자고 일어나니 손등과 손가락이 퉁퉁 부어 있었다. 혹시 당뇨합병증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 다음날 보니 손가락 마디에 푸르죽죽하게 끼인 흔적이 발견됐다. 그 순간에 무척 아팠을 텐데도 말로 표현을 못하니 자식 된 도리로 엄마의 몸 상태를 세세히 확인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저녁에 말끔히 씻긴 후, 침대에 걸터앉아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애기가 된 엄마의 모습. 밥을 먹여주고, 씻겨주고, 뒤처리를 해 줘야 되는 늙은 아기. 다행인 것은 엄마는 착한 치매라 본능적인 것들이 해결되면 늘 웃는다는 것이다. 엄마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편안해진다. 엄마가 종일 말도 안 하고 있으면 간지럼을 피워 엄마의 웃음소리를 일부러 유도한다. 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나서 볼에 주름살 하나 없는 엄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아기를 보살피고 있는 느낌이다. 아주 순하고 예쁜 아기를.
문득 블랙홀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블랙홀이 생기지 않도록 아버지도 엄마 속을 덜 썩이고 나도 결혼 안 하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지금쯤 엄마가 담근 김치를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을 테고, 아버지도 혼자 노인 복지관 점심을 사먹는 일은 없을 테고 엄마와 나란히 여행도 다니지 않겠는가.
나의 문학적 순간은 엄마가 목욕 가방을 뒤지는 순간이다. 나도 적잖게 놀라 말을 더듬거리며 엄마를 다독이는 그 순간. 차마 우리 가족에게는 오지 말았어야 할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