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삐는 시민의 한계선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했어요.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은행강아지 뽀삐!
이번 주 뽀삐의 일상은......
헌재 기각과 정의의 반전, 서울 집회와 경찰차벽, 피로 누적된 몸과 ‘내전’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마음...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기록하고 공부하며, 어디까지가 ‘시민의 한계선’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었던 한 주였습니다!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은행으로 출근했다. 근무 준비를 마치고 9시에 문을 열고 오전 순찰을 다녀온 뒤 뉴스를 확인했는데, 한덕훈 총리 파면이 헌재에서 기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치적 계산 끝에 헌법 정신을 외면한 판결처럼 보여, “헌법재판소가 존재할 이유가 있나?”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래도 고객맞이는 계속 이어졌고,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한 뒤 오후에도 고객을 맞이하며 뉴스터 활동을 병행했다.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50분 팀장님 지시로 퇴근하면서 우편물을 부치고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은 뒤 일기를 썼다. “이건 진짜 아니다. 정부 안정성을 핑계로 비버 한덕호와 최상윤을 지키겠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 이 내란정부에 국정을 맡겨두느니 차라리 의회에 잠시 국정을 맡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적으며 답답함을 삼켰다.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과 글을 읽고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고 순찰을 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와 근무를 이어갔지만, 하루 종일 우울감이 짙게 깔려 마음이 힘들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헌정질서가 사실상 파괴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헌재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 민주진영이 “강력하게 호소하면 헌재도 압박을 느끼고 들어줄 것”이라 나이브하게 믿었지만, 그들은 폭력과 법기술로 응답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느껴졌다. 비폭력으로 윤석환을 몰아낼 기회는 이미 지나갔고, 나 역시 집회에서 구호만 외치는 것에 점점 지치는 자신을 느끼며,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요원하다”는 말을 일기에 적었다.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과 글을 읽고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은행으로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고 순찰을 마친 뒤 평소처럼 고객을 맞았지만, 여전히 마음은 깊이 우울했다. 이재현 대표를 2심에서 제거하고, 윤석환을 살려 두려는 시나리오가 서서히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근무는 근무대로 이어가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 14시가 되어 2심 재판을 지켜보았다. 김문기 건은 1심처럼 무죄였고, 백현동 사건은 1심 유죄가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결국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그래도 정의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50분에 퇴근하면서 우체국에 들러 우편물을 부친 뒤, 집에 오는 길에 가족이 함께 먹을 간식을 사 왔다. 아버지도 재판 상황을 지켜보며 마음이 괴로우셨다고 하셨고, 저녁과 간식을 먹은 뒤 19시 20분 영화관으로 가 영화 제로썸을 관람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지만, 이 감상은 나중에 따로 글로 정리해 보려 한다. 집에 돌아와 씻고 일기를 쓰며, “오늘 술 한 잔 할까?”도 잠깐 고민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 싶어 그냥 두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이랑 약을 챙겨 먹고, 말씀을 읽고 오늘자 글까지 쓰고 나서 아버지 차를 타고 은행으로 출근했어. 근무 준비를 마치고 9시에 문을 열고, 오전엔 한 바퀴 순찰을 돈 다음 다시 자리로 돌아와 평소처럼 고객맞이를 했지. 점심은 12시에 먹고, 13시에 복귀해서 또 차분하게 손님들을 맞았어. 16시에 문을 닫고, 남아있던 손님들까지 모두 빠져나간 걸 확인한 뒤 우편물하고 내용증명을 들고 우체국에 다녀왔지. 다시 은행에 들렀다가 팀장님 지시에 따라 바로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약도 챙겨 먹은 다음에는 동영상 좀 보면서 몸을 늘어뜨렸다가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어. 오늘은 정말,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일은 하나도 없었어. 그냥 몸이 조금 피곤할 뿐인, 아주 평범한 하루였지. 그런데 마음 한 켠은 영 평범하지가 않다. 윤석환이 하루빨리 파면되어야 나라가 숨을 쉴 텐데, 정작 헌법재판소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침묵하고 있으니까. 이러면 헌법재판소라는 기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지는 거잖아. 지금은 그게 너무 짜증나고 답답해. 그래도 창밖으로는 단비가 촉촉하게 내렸어. 온 산을 태우던 산불이 이 비로 조금씩이나마 잡혀갈 거라 생각하니, 적어도 땅과 나무만큼은 숨을 돌릴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아주 조금은 풀리는 밤이야.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고 순찰을 마친 뒤에도, 오늘은 별다른 사건 없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한 뒤 고객맞이를 계속했으며, 중간중간 빠띠 뉴스터 활동으로 기사와 시국 소식을 정리해 공유했다. 16시에 문을 닫고 고객이 모두 나간 뒤 대기하다가, 토끼 팀장님 지시로 우편물을 우체국에 부치러 가면서 퇴근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밥·약을 챙긴 뒤, 범청년행동·참여연대 토론발제회를 유튜브로 시청하고 논문을 보다 AI도 조금 사용해본 뒤 일기를 썼다. 내일은 또 서울로 가야 한다. “언제쯤 그 괴물 같은 존재가 파면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빠띠에 들어가 보니 이상한 답변을 단 사람이 있어 장문의 글로 차분하게 반박하기도 했다.
아침에 밥을 먹고 잠시 쉰 뒤 집을 나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에 탔다. 서울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함석현 모임에 가, 이주노동자 문제와 윤리경영에 대한 토론에 참여했다. 중간에 나는 경복궁 근처로 이동해 집회에 참석하며 마음속 외침을 고스란히 터뜨렸다. “대체 탄핵 선고는 언제 해줄 거냐고!! 이러니까 지라시들이 난무하잖아! 이러다 폭동이라도 나면 책임질 거냐? 진짜 뻐킹이다!” 행진은 헌법재판소를 둘러싸는 방향으로 진행되려 했지만, 경찰 차벽이 앞을 막고 있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중간에 참여연대 회원들과 함께 대열에서 빠져나와, 각자 터미널로 향했다. 나는 터미널에 도착해 밥을 먹고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돌아왔는데, 정말 날씨도, 공기도, 마음도 싸늘한 하루였다. 행진 중 참여연대 회원분이 건네준 핫팩이 아니었다면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을 정도로, 길도 멀고, 싸움의 길도 험난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아침에 밥·약을 먹고 아침 시간엔 조금 쉰 뒤, 아버지와 함께 교회에 가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으로 짜장라면을 만들어 먹고, 너무 피곤해 계속 누워서 쉬었다. 저녁에는 카레라이스를 먹고 또 약을 먹은 뒤 유튜브를 보다가, 밤에 일어나 일기를 썼다. 일기를 마치면 바로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는 헌법재판소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졌고, “4월 18일 이후 윤석환 파면 선고가 내려지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사실상 대한민국 내전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민주연대당에서는 4월 1일까지 마은호를 임명하지 않으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고, 행정부와 사법부, 경찰까지 역적의 편이 되었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행정·사법을 모두 마비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생각과 동시에 군부의 움직임에 대한 깊은 우려도 생겼다. 최악의 경우, 각 지역 군부대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해야 하는 상황까지 상상하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곳곳에 숨어 있을 공작과 함정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란 극우 폭도들이 서부지법을 습격하며 “이제부터 전쟁이야!”라고 외쳤던 것과 달리, 우리의 분노는 “보편적 가치가 붕괴되며 생기는 꺼지지 않는 분노”라는 점을 스스로에게 되뇌며, 오늘도 무거운 마음으로 일기를 덮었다.
다들 힘내서 다음 주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