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생겨서 나를 싫어할 거야.
20살, 대학교에 입학했다.
봄바람과 벚꽃이 반겨주는 것에 비해
학교생활은 가을 같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새로운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모두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예쁘고 날씬한 친구들 곁에 다가가는 일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나를 벌레처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건 온전히 내 느낌이었다.
피해의식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냥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도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혼자서 먼저 결론을 내려버렸다.
내 안에 해결되지 못한 것들이
계속해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분명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말하긴 어려웠지만,
낯선 환경과 혼자 보내는 시간
타인의 시선까지 더해져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었다.
그중에서도 외로움이 가장 컸다.
아무리 친구들이랑 밥을 먹고,
같이 웃고, 놀러 다녀도
내 안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유독 어린 시절부터 불안과 함께였던 나는,
20살이 되어도 그대로였다.
알 수 없는 결핍을 안고 있었다.
기숙사 1층에는 편의점이 있었는데,
주말 아침이면 룸메이트 몰래 과자를 사 왔다.
마치 할머니와 살던 그때처럼
여전히 음식으로 감정을 달래고 있었다.
학업은 점점 멀어졌고, 그저 방학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방학이 되자마자
엄마아빠에게 통보하듯이 말했다.
"엄마 아빠, 나 자퇴할래."
엄마아빠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왜 그렇냐는 엄마의 물음에,
학과에 적응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얘기했다.
아빠는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간의 긴 언쟁 끝에,
결국, 나는 자퇴를 했다.
20살 가을,
친구들은 대학교 1학년 2학기를 시작할 때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장 오래 버틴 곳이 고작 두 달이었다.
그마저도 매일 그만둘 이유를 세며 버텼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사람들과의 사회생활이 견디기 힘들 만큼 어려웠다.
그만두고 싶다 못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걱정돼"
"내가 못생겨서 싫어하는 걸 거야."
"내가 소심해서 그래."
"뚱뚱해서 나를 싫어하는 거야."
그리고 늘 마지막엔 이 말이 따라왔다.
"전부 다 네 탓이야."
사회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전부 내 탓이었다.
내가 못생긴 탓.
내가 뚱뚱한 탓.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창 예뻐야 할 20살을
스스로 옥죄는 어두운 동굴 안에서 보냈다.
계속해서 낮아지는 자존감.
지나치게 신경 쓰게 된 남의 시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