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는 할머니와 7년을 함께 살았다.
내 방이 생긴 뒤에도 악몽을 꾸거나 괜히 불안한 날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할머니 방으로 향했다.
새근새근 잠든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그 배를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만큼은 불안도, 걱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포근하고 따듯했다.
내 몸이 온통 할머니 냄새로 뒤덮일 때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날이 점점 추워지던 11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오랜만에 보는 친척 오빠가 와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지금 바로 떠난다고 했다.
"할머니 진짜 가?"
"할머니 이제 고모랑 살 거야."
"너희 아빠, 엄마랑 싸워서 이제 같이 안 산다."
"그게 무슨 말이야…? "
"할머니 이제 여기서 못 살아."
"서울 고모집으로 갈 거다."
내 룸메이트이자,
내가 의지하던 사람,
내 불안을 잠재워주던 사람이
아무 예고도 없이 내 곁을 떠난다고 했다.
친척오빠는 이미 출발할 준비를 마쳤고,
할머니는 뒷좌석에서 울먹거리고 있었다.
"달이야 잘 지내거라."
"할머니 간다"
그렇게 열일곱의 나는 하루아침에 할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할머니가 떠난 뒤,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공간은 너무 어두웠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환하게 나를 맞아주던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집에 도착해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늘 그랬듯 베란다를 통해 할머니 집으로 건너갔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어두운 방.
손끝으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스위치를 켜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마저
무서울 만큼 어둠이 길게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할머니의 숨결이 머물던 공간이
오늘은 마치 버려진 폐허 같았다.
똑같은 방, 똑같은 공기인데...
할머니 한 사람만 사라졌을 뿐인데...
모든 것이 뒤툴린 듯했다.
어제까지 내 옆에서 잠들던 사람이 오늘은 내 곁에 없다.
불안할 때면, 꼭 끌어안던 할머니를 대신할만한 무언가도 없었다.
그저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밤을 견뎌냈을 뿐...
그때의 감정들은 끝내 해소되지 못한 채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나는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혼자 있는 날이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불안이 감싸는 날이면 여전히 심장이 요동친다.
하지만, '나'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내 안의 나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불안한 날이면
현재의 나도 함께 흔들렸다.
알 수 없는 불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과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말을 건넸다.
괜찮아.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괜찮아진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말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