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변기를 붙잡고
토를 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분명 괜찮아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토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는데,
어느 순간 또다시
매일 변기 앞에 앉아있는 나를 마주하게 됐다.
이번엔 반드시
내 힘으로 이겨내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는데,
결국 나는 또 그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문득 예전의 생각이 스쳤다
“결혼 후에도 내가 이러고 있으면,
정말 끔찍할 것 같은데...”
대학생 때 했던 그 두려운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눈물이 흘렀다.
“나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자괴감이 밀려왔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 행동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남편에게조차 꺼낼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하루에 4번이나 토를 했다.
먹고 토하고 ,
또 먹고 다시 토하고,
분명 아침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남편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 폭식하고... 일부러 토해.”
살찔까 봐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금세 얼굴이 붉어지고
참아왔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말없이 내 얘기를 듣던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달이야 상담을 받아보자. “
”엄마, 나도 그러려고 했어. “
” 난 괜찮아.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내가 꼭 고칠게. 걱정하지 마. “
엄마가 누구보다
마음 아파할 걸 알기에..
나는 억지로라도 웃으며 말했다.
그날 밤
인터넷에 “폭토”를 검색했다.
*폭토: 폭식하고 토하기
뭐라도 붙잡고 싶다는 마음으로
검색 결과를 하나하나 눌러보다가,
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폭식과 구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었다.
들어가 보니
수많은 일기와
도움을 청하는 글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몇몇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도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마음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갑자기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글들을 더 내려보다가
폭토라는 행동을
“식이장애”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식이장애..?’
‘내 행동이 식이장애라는 거야..?’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심장이 쿵쿵..
마치 내가 어느새
‘환자’로 분류되어 버린 것 같은
이상한 낯섦과 거북함이 밀려왔다.
아직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이름부터 먼저 붙여진 느낌이었다.
왠지 숨이 턱 막히고
속이 울렁거렸다.
처음 상담소에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상담소 문을 열기 전까지
몇 번이고 망설였다.
그 문을 열면
내가 진짜 ‘환자’가 되는 것 같았다.
식이장애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망설이는 걸 보셨는지.
“달이 씨?”하고 문이 열렸다.
멀리서 오셨죠. 들어오세요.
상담선생님은 따듯하게 나를 맞이해 주셨다.
낯선 공간
낯선 공기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불신까지.
긴장되는 마음과 두려움에
심장이 쿵쿵 거리며 불안함을 표시했다.
이런 나의 불안을 알아챈듯한 선생님이 말했다
“불안하시죠?”
“그냥 편하게 얘기해 주시면 돼요.”
“어떤 것이든 뭐든요.”
침묵이 흘렀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힘들어요 선생님.”
내가 꺼낸 첫마디였다.
“어떤 게 제일 힘든 신 것 같아요?”
“날씬해지고 싶어요.”
“저는 항상 통통했어서,
다이어트에 너무 집착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말도 안 되는 먹고 토하는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고치고 싶어요. 너무 힘들어요..”
“아고.. 그러셨군요.
”다이어트는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언제부터 살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으셨던 걸까요?
"살이 찌고 나서 안 좋은 기억 같은 게 있으세요?”
선생님은 내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셨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따라가듯
하나씩 질문을 건넸다
다이어트는 언제부터였는지,
살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그 질문들에 답하면서
여전히
다이어트가 가장 큰 문제라고 믿었고,
선생님의 질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그동안 혼자서만
붙잡고 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밖에 꺼내놓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날의 상담은 나에게 충분히 낯설고,
충분히 두려운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