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긴급상황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
미국 시카고에서 한바탕 쇼핑을 끝내고 나니, 밤 10시가 넘었다. 그렇게 늦게 백화점을 빠져나왔는데도 여전히 이 도시는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것이 마치 서울의 '강남역'을 연상케 했다. 미국은 보통 밤에 돌아다니는 게 위험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지만, 첫 해외 대도시 여행이니 만큼 그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들어섰는데, 뭔가 이상하다. 누가 낙서를 한 것처럼 운전석 도어 부분의 잔 스크래치가 가득했고, 바퀴는 보닛 안쪽으로 움푹 들어갔다. 헤드라이트는 무언가에 찍혔는지 주저앉아버렸고, 보닛 위에는 A4용지 하나가 걸려있었다. 바로 Police Report Document. 그러니까 사고 후 현장에 경찰이 출동해서 사건 경위를 작성한 문서였다.
'시카고 버스가 당신의 차를 치고 갔으니, 당신의 보험사에 보고를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시오.'
그 서류 안에는 해당 버스 운전기사의 면허증 번호와 이름, 구체적인 버스회사 이름과 차대번호가 담겨있었다. 기사와 경찰이 직접 손으로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빼곡하게 적어놓았다.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를 불안과 걱정이 물밀듯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기웃기웃거렸지만 나는 그런 시선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이, 그저 머리가 아득해졌다.
"괜찮아, 보험 부르면 되지."
당시 여자 친구가 나에게 침착하라고 현명한 조언을 해줬고, 그 말 덕택에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할 정도로 침착하게 모든 상황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렌터카 보험사에 전화해서 최대한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를 풀어나갔고, 보험사 직원이 소개해준 Tow service(일명 '레커') 업체에 다시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하고, 주소를 보내줬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12시를 넘어 새벽을 향하고 있을 때쯤 토우 드라이버가 도착했다. 친숙한 느낌이 나는 중년의 멕시칸 남자였다. 그는 친절하고 간결하게 설명해줬다.
"차를 싣고,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으로 가서 차를 반납하시고, 새 차를 받으면 됩니다."
별 대수롭지 않은 듯이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나는 혼자 조용히 생각했다.
'시카고에서 이런 일을 겪는 내 인생이 레전드다... 미국인도 이런 일은 겪기 어려울 텐데...'
차를 레커에 안전하게 싣고, 바퀴를 다시 한번 고정시킨 작업을 마친 남성은 레커 조수석에 올라타라고 했다. 멍하니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새벽 두 시가 넘어 공항 렌터카 주차장에 도착했고, 새 차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숙소까지 운전해서 도착하니 새벽 세 시가 넘었다. 정말 영화 같은 하루였다.
여행을 하다 보면 긴급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침착하게 대처하려는 마음가짐'이다. 나는 정말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꽤 갖고 있는데, 그 상황은 결과적으로 전부 잘 마무리되었다. 그 마음가짐 덕분에. 의외로 대부분의 경우에는 마무리가 된다. 단지 그 과정을 '핸들링하는 방식'이 각자 다를 뿐이다. 나름대로 유럽, 북미의 해외여행을 다수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긴박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대처할수록 자신만 더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혹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후회와 걱정. 분명히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결국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수 있어. 괜찮아!' 하고 훌훌 털어내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좋다. 그럴수록 일이 더 순조롭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가 명상록에서도 강조했던 것처럼,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지금 당신이 어떤 사고를 당했다면, 일단 침착하고, 느려도 좋으니 천천히 방법을 하나씩 찾아보자. 반드시 침착해라. 별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게 결국엔 최선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