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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와 품격, 그리고 그 사이의 균형

'품위 유지'라는 단어에 깃들어 있는 심리

by cogito


품위(品位)와 품격(品格).

언뜻 보면 비슷해보이는 두 단어지만,

그 의미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두 단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품위: 직품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사람이 갖춰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뜻하는 말


품격: 사람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을 이르는 말


이 정의를 바탕으로 해석해보면,

품위는 한 사람의 지위에 걸맞는 매너와 외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인 반면,

품격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격(格)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품위는 사회적 위치와 타인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지만,

품격은 그 사람이 가진 사고의 깊이 삶의 태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




'품위 유지비' 라는 단어의 기원



품위를 유지하려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외적인 모습을 가꾸는 비용이 필요하다;


좋은 옷을 입고,

격식 있는 장소를 찾으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한

'투자'가 불가피하니 말이다.


그러나 품격은 돈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품격을 높이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진정한 품격은 치열하게 사고하고 성찰하며,

생각의 '그릇' 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애초에 '품위'라는 개념은 타인의 시선이 존재해야만 성립할 수 있다;


꾸미지 않은, 허름한 옷차림의 행인을 상상해 보자.

겉모습만 보면 그를 '품위가 떨어져 보인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그의 '품격'은 직접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이상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품위와 품격 모두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면, 우리가 옷을 단정하게 입으며 외모를 꾸미는 것은

스스로의 만족과 자존감을 위한 부분도 있지만,

타인에게 함부로 대우받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다.


결국, 품위와 품격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내면의 가치관과 자아상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 다만 삶의 저울이 '품위'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끝내 자기 자신이 무너질 수 있다.


남의 시선이 나의 만족보다 중요해지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의 규범과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취미 생활과 여가를 즐기면 되고, 사회적 지위보다는 삶의 균형과 본인의 만족감을 우선할 수 있다. 재정 상황을 추월하는 소비를 할 필요도 없다 - 본인의 처지에 맞게 적당히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면 되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은 타인에게 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담되는 선택들을 내린다.

- 이 모두가 '품위 유지비'라는 명목하에.


특히 한국에서 위 현상이 심하다는 것은,

'품위'와 'Dignity'라는 단어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품위 vs Dignity.


영어에서는 '품위'와 '품격'에 대응되는 표현으로 'dignity'라는 하나의 단어가 사용된다;

하지만, 'dignity' 의 의미는 '품위'보다는 '품격'에 가깝다;


Dignity always prevails.
(존엄성을 지키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


- 이 문장는 영화 '그린북 (The Green Book)'에서 '셜리 박사 (Dr. Shirley)'가 남긴 대사이다.


1960년대의 미국에 살던 셜리 박사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분노에 휩싸이거나 무너지는 대신, 오히려 평온하며 신사다운 태도를 유지한다.


주변의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내려놓지 않는 그의 모습

'Dignity'라는 단어의 본질을 보여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과 품격을 지켜내는 것


-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dignity' 아닐까.



Dignity always prevails 라는 명대사를 남긴 셜리 박사. (출처: https://www.tiktok.com/@goldsceness/video/709569639)


'품위'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


흥미로운 것은,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의 외국어에선

'품위 유지비'라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존엄성', '품격'에 해당하는 단어만 있을 뿐이다.

(혹시 외국어 중 '품위 유지비'라는 단어를 아시는 분 있다면, 댓글로 정정 부탁드립니다;;)

'품위'와 '품위 유지비'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널리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많은 이들이 내면의 성장보다는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춰지는지에,

본인의 만족보다는 '남들보다 우월한 것'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SNS

비교심리

그리고 끊임없는 경쟁과

패배의 열등감.


- 사회에 만연한 이 모든 요소가 그 집착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 같다.




이에 물들지 않기 위해,

품위보다는 품격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과연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목메고 있지 않나?
내 한마디가 누군가의 품위 또는 품격을 깎아내리지고 있지는 않나?


위 질문들을 되새기며,

나와 타인의 품격을 지키는 사람이 되자

재차 다짐해본다.





P.S.

브런치 글을 쓰며,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어 링크를 올려본다.

'품위'라는 단어의 해석이 나와 다르지만,

글로써 전하는 본질은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이분도 '품위유지비'에 해당하는 외국어를 찾지 못했다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https://brunch.co.kr/@saddjw/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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