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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헝거게임' : 트라우마가 남기는 잔해에 대하여

주인공 '캣니스'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

by cogito

인생의 크고 작은 시련들은 사람의 마음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이를 효과적으로 그려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헝거 게임 (The Hunger Games) 아닐까.



헝거게임의 배경


헝거게임은 독재 국가 '판엠'을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며, 영화는 이를 각색하여 제작되었다.


판엠은 수도인 '캐피톨 (Capitol)'과 '12 구역 (12 districts)'으로 나뉘어 있다;

캐피톨 시민들은 풍요와 사치를 누리는 반면,

12개의 구역의 주민들은 굳은 노동과 빈곤에 시달린다;

그리고 매년, 캐피톨의 지도자들은 각 구역에서 2명씩 참가자를 선발해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싸우는 '헝거 게임'을 개최한다.

(게임에서 살아남은 우승자는, 23명의 목숨값으로 평생의 부귀영화를 보장받는다.)


헝거게임은 전국에 생중계되며, '캐피톨'의 시민들은 참가자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오락거리로 소비한다.


빈곤층들의 희생을 연료 삼아 유지되는 사회와

약자들의 죽음을 유희로 여기는 권력층.


- 헝거게임은 이러한 잔인한 세상 속에 놓인

캣니스(Katniss)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이번 글에서는 캣니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트라우마'가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뤄보고자 한다.

(스포일러는 불가피하지만... 최소화하도록 노력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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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캣니스 (Katniss)의 인생사


The odds were never in our favor.
(세상은 우리 편이 아니야.)

위의 대사는 헝거게임의 주인공, 캣니스(Katniss)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캣니스는 11살에 아버지를 탄광 사고로 잃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다.


그 결과, 캣니스는 어린 나이에 가장의 책임을 떠안고,

여동생 '프림 (Primrose)'을 지키는 부모의 역할도 자처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 억척스럽고 독립적인 성향을 키운 캣니스와는 달리,

프림은 순수하고 정이 넘치는 성격이다;

캣니스는 이런 동생을 거친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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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캣니스


세상의 가혹함을 일찍 깨달은 캣니스는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영화 곳곳에서 그녀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의심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진심 어린 호의조차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그녀를 좋아하는 남주 '피타 (Peeta)'와 '게일 (Gale)'이 호감을 표할 때에도

설레하기보다 혼란스러워한다.

- 캣니스에게 사랑과 설렘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생존은 곧 투쟁이었으며, 이를 위해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순수한 '호의'와 '배려'는, 그녀에게 낯설고도 불편했던 감정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캣니스가 주인공으로서 빛나는 것은

갖은 역경 속에서도 인간성 (humanity)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헝거 게임'에 자원하고,

상대방을 죽여야만 하는 게임 속에서도 약자들을 보호한다.

캣니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집과 정의감은,

그녀가 끝까지 약자의 편에 서며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정리하자면, 캣니스는 자신에게 소중한 이들을 지키려는 '희생적인' 인물이자,

인간성을 끝까지 놓지 않는 '강인한' 캐릭터이다.

그녀는 때때로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만, 이는 그녀가 내면의 따뜻함과 정의감을 표현하는 데 서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행보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 감동을 주며, 사람들은 그녀를 '저항의 아이콘'으로 추앙하게 된다.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


캣니스는 헝거게임에 참여하기 전부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왔다;

그저 삶의 무게와 책임감 때문에, 강한 척한 것일 뿐.

하지만 헝거게임이 진행되면서 그녀의 마음은 더욱 만신창이가 된다;


이야기 속에서 캣니스는 소중한 사람들을 여럿 잃고,

잔인한 장면을 수없이 목격하며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극 중에서 그녀는 악몽과 환각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complex PTSD (복합 외상 스트레스 후 장애) 증상에 해당된다. - 단일한 트라우마(single trauma)를 계기로 생기는 PTSD 와는 달리, complex PTSD는 만성적 (prolonged) 혹은 여러 차례의 트라우마에 노출된 사람에게서 발생한다. 현실 속에서는 전쟁 참전 용사, 내전 국가 주민, 아동 학대 피해자등에게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maxresdefault.jpg 캣니스의 심리를 다룬 유튜브 영상 캡처 (링크는 하단에)



안전하지 못한 세상과 멍든 마음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불안'은 자신이 속한 세상이 안전하지 못하며, 지켜줄 사람이나 의지할 곳이 없다는 마음의 구조 신호이다.

(어떤 심리 전문가들은 '불안'을 뇌의 '화재경보기 (fire alarm)'에 비유하기도 한다.)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불안은 사람의 세계관을 왜곡시키며, 나아가 생각과 인격을 위축시킨다 - 이를 버텨낸 캣니스가 대단할 뿐이다.


영화의 초반에서 캣니스는

'I'm not having kids

(난 아이를 갖지 않을 거야)'라 말한다.

일반적으로 출산과 육아는 '희망'의 상징이다;

아이들은 삶이 잘 풀릴 것이라는 희망을 원동력 삼아 성장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하지만 캣니스가 속한 세상은 희망을 품기는커녕, 기본적인 생존조차 보장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녀는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를 낳는 행위 자체가 '폭력'이라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사는 곳(한국 남한)은 헝거게임에서 묘사된 사회만큼 잔혹하지 않지만,

여전히 곳곳에는 크고 작은 부조리가 존재하며,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들이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

또한, 세상 다른 곳에서는 캣니스처럼 끔찍한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전쟁이 한창인 시리아, 우크라이나, 콩고 등을 생각해 보라.)


헝거게임 속 캣니스를 통해

사회의 잔인함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다시금 고민해 보게 된다.



(번외) 개인적으로 영화 '헝거게임 1, 2는 비교적 잘 만든 작품이라 생각하고,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도 탁월했다 (J LAW~~!!)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 때문인지, 캣니스의 심리를 깊이 있게 담아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느껴졌다.

'캣니스'라는 인물 자체를 깊게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겐 원작 소설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캣니스의 심리를 다룬 유튜브 영상 (영어) :

https://youtu.be/5SBvdzcC6jU?si=gk16NFmjVRvisU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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