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즐거움을 놓치고 살았던 나에게
“어머, 이런 사진이 있었네.”
옛 사진첩을 뒤적이다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눈이 멈췄다.
새하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해변가의 파도 곁을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잇몸이 보이도록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 속의 때 묻지 않은 기쁨이 사진 밖의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저렇게 순수하게 행복할 수가 있다니...”
사진 속 과거의 내 모습이 어찌하여 그리 낯설게 느껴졌을까?
나는 화장실로 가서 거울 속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미간, 빛을 잃은 눈동자, 그리고 처진 입꼬리. 옛날의 표정을 흉내 내듯 억지로 미소 지어 보았지만, 입가 근육들이 경직되어 어색하기만 했다. 이제는 그 단순했던 ‘웃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2024년이 되고 나는 어느덧 졸업반이 되었고, 대학생활이 곧 끝난다는 실감이 채 나기도 전에 졸업사진 촬영 공지가 날아왔다.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니. 설렘보다는 시원섭섭함이 앞섰다.
졸업사진 이야기에 들뜬 가족들과 함께 입을 옷이며 포즈, 화장법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던 중,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나는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낸 거지?”
흔히 ‘20대’라는 나이 앞에는 ‘찬란하다’, ‘활기로 가득하다’ 같은 수식어가 채워진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지금까지 너의 20대는 어땠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런 밝은 단어들을 쓰지 못할 것 같다. 지금까지의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웅크리고만 있었던 느낌이기 때문이다.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무언가를 ‘즐기는 것’에 서툴러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의 나는 좋아하는 것이 참 많았다. 그리고 그만큼 사소한 것에도 쉽게 기쁨을 느꼈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이 맛있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붕 뜨고, 마트에서 사 먹는 초콜릿 빵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 영화도 좋아해서 해리포터 시리즈나 디즈니 작품은 수십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들은 노래 하나에 반하면 온종일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혼자 행복해하곤 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공부량이 많아지면서,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되도록이면 어울리지 않았고, 맛있는 메뉴가 나와도 학교 급식을 건너뛰기 일쑤였다. 물론 혼자 있는 것이 외롭고 쉬고 싶었던 적도 많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했던 이유는 ‘행복’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공부하기 싫어질까 봐, 그리고 그곳에 안주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나를 버티게 했던 것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온 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 대학은 그저 고등학교에 비해 더 복잡하고 해결이 어려운 과제들로 가득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학창 시절엔 공부와 학교생활이라는 명확한 잣대로 평가받았다면, 대학에서는 ‘나’라는 인간 자체를 브랜드처럼 가꿔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학업뿐만 아니라 교양, 외모, 인간관계, 심지어 돈까지… 챙겨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았다.
“대학에 와서도 쉴 수는 없겠구나.”
이 생각과 함께, 내가 꿈꾸던 20대에 대한 로망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학창 시절과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족할 만큼 ‘잘난’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행복을 누리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쉬거나 즐기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성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어… 분명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았는데….’.
‘내가 남들보다 열심히 안 사는 건가?’
몰려오는 자책감을 뒤로하고 더욱 자신을 몰아세웠지만, 되려 역효과가 났다;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열심히 일하지도 못하는 - 그런 어중간한 하루가 계속되었고, 몸과 마음 모두 방전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무엇을 즐기는 법을 점점 잊어버렸고, 어느새 내 얼굴에서는 웃음기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졸업사진이 찍을 때가 되어서야 거울 속 나 자신을 제대로 마주해 보았다; 지금까지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나는 아무리 꾸며봐야 예쁘지 않을 거라는 핑계로 줄곧 미뤄왔던 일이었다. - 어렸을 때의 생기 넘치던 모습과 달리, 지금의 내 표정은 뭔가 그림자가 진 듯 어두웠다.
어디선가, 쉬지 않고 일만 하는 사람은 결국 일을 가장 못하게 된다는 역설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떠오르는 순간, 지금의 내 모습이 문득 선명해졌다. 나는 그동안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점점 소진시키고 있었다.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즐거움’만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 자체였던 것이다.
많이 지쳐 보이는 나 자신에게,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남들보다 잘나지 않아도 괜찮아.’
‘잠시 쉬어 가도 괜찮아.’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남도 아니고, 스스로가 해 준 위로에도 이렇게 울컥할 수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이제 나는 조금씩 다시 배워보려 한다;
작은 행복에 발을 들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매 순간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법을 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다독이며, 사진 속 아이가 보여준 그 웃음을 되찾고 싶다.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를 이해하고,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웃는 법을 배우고, 다시 나 다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그렇게 사진 속 아이와 지금의 내가 천천히 하나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