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브리짓'의 심리: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을 줄 아는 것
나는 솔직히... 한 가지도 말할 자신이 없다.
(굳이 하나 꼽자면, 나를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정도?)
반면, 단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두꺼운 책 몇 권은 거뜬히 쓸 수 있을 만큼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어릴 적 나는, 자의식이 완전히 자리 잡지 않아서였을까, 지금처럼 의기소침하지는 않았다.
그때의 나는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타인의 평가에 크게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내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머리가 굵어지며 사람들의 시선과 분위기를 읽을 수 있게 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 자신의 결함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고,
조금의 실수나 주변의 지적에도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어느새, '난 이 정도면 괜찮지'했던 근자감은
'나는 뭘 해도 부족해'라는
자기 불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이 불신은,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라는 믿음으로 연결됐다.
영화 <브리짓 존스> 시리즈의 주인공, 브리짓(Bridget, 르네 젤위거) 역시,
자신감 없고 불안정한 인물이다.
그녀는 허점투성이인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선 '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여성상'에 자신을 끼워 맞춰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운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통해 마른 몸매를 갖기
커리어를 쌓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는, 멋진 남자를 만나 솔로 탈출하기
하지만 그녀는 번번이 실패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담배, 술, 폭식 같은 자기 파괴적인 습관에 빠진다.
특히 흥미롭고도 안타까운 점은,
브리짓이 '남성의 시선'에 지나치게 연연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거의 모든 노력은 자신의 행복과 성취보다는,
남성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녀는 매력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 도를 넘는 도전을 감행하고,
남성의 반응에 따라 감정이 널을 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브리짓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허점은 많지만 위트 있고 에너지가 넘치며,
그 덕에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능력 있는 남자들이 그녀에게 반한다.
완벽하지만 차가운 냉미녀들보다,
실수가 많지만 솔직하고 따뜻한 브리짓은
훨씬 인간미가 넘치며 사랑스럽다.
극 중에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해 주는 마크 다시(Mark Darcy, 콜린 퍼스)도 등장한다.
하지만 브리짓은 그와 사귀면서도 여전히 불안해한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게, 마크의 사랑은 과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브리짓은 마크 주변에 예쁜 여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의심과 불안에 휩싸이고,
결국 이 불안은 두 사람이 이별을 거듭하는 원인이 된다.
(다행히, 시리즈의 결말에서 브리짓은 마크와 이어지긴 한다. 물론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브리짓은 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조차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이유는 복합적이다.
한 가지만 들어보자면....
브리짓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딸에게 늘어놓곤 했고,
은근히 나르시시스트적인 성향이 있던 어머니는
"너는 좀 더 말라야 해",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해"와 같은 메시지를 그녀에게 주입했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역기능적인 가족 속에서 자라며,
온전한 사랑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브리짓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끝끝내 확신하지 못한다.
마크가 아무리 확신을 주려 해도,
결국 그녀는 그의 곁을 먼저 떠난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을 학대하는 나쁜 남자에게 끌려다닌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사랑도 온전히 받을 수 있다.
- 브리짓 존스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생각이다.
사람은 본래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다.
그렇기에, 외부의 인정과 확인을 갈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중심을 잡고 있다면,
외부의 바람에 잠시 휩쓸리더라도 곧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브리짓은 중심을 잃은 채 끊임없이 외부에 의존한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없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점은 보지 못한 채, 스스로의 단점이 전부가 되어버렸던 브리짓 -
그녀의 모습에 자꾸만 나 자신이 겹쳐 보여서 더 마음이 아팠다.
"몇 킬로만 빼면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거야"라는 생각 대신
"내가 건강해지기 위해 살을 조금 빼야지. 그래도 지금의 나도 충분히 예뻐!"라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솔로를 벗어나면 주변의 시선이 달라질 거야"라는 믿음 대신
"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거야"라는 마음으로 연애를 했다면,
브리짓의 삶도, 나의 삶도, 좀 더 안정적이지 않았을까.
사랑받기를 바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먼저 익혀야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위 글은 <브리짓 존스> 시리즈 중,
지금까지 개봉된 3편의 영화를 바탕으로 쓰인 것입니다!
오는 2025년 4월 16일에, 4번째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