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있는 젊은 남녀와 출입구 쪽 벽에 붙어 그 둘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중년의 여성. 해실한 표정을 한 젊은 여자는 깁스한 다리를 올린 체 누워있다. 남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몇 마디 말을 뱉는다. 태어난 뒤 걱정이라곤 해본 적 없는 것처럼 웃던 여자는 표정이 바뀌고 남자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말한다.
"저 이제 요노스케씨에서 '씨'를 빼고 부를래요. 괜찮나요?"
"응, 좋아."
"그럼, 저기... 요노스케."
"쇼쿄."
"네. 요노스케"
"쇼,쇼코."
"네. 요노스케!"
"쇼코"
"네!"
젊은 남녀는 한참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행복해했다.
하루를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데만 써도 좋은 두 사람. 이렇게 오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름만 불러도 행복할 수 있구나. 이 장면을 보면 각자 생각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서로 바라만 봐도 좋은 때가 있었을 테니까.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런 순간이 곧 찾아올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적인 첫 순간.
그 간지러운 느낌을 이제 나도 안다. 얼굴의 솜털이 서로의 숨결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느낌.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눈빛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나도 똑같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신비. 어떤 풍경은 그때 그 순간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늘어진 햇볕이 작은 창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고, 따스함에 방안 먼지들도 기지개 켜고 팔랑팔랑 날아다니던 그날. 바닥에는 정리하다만 책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고, 한쪽 벽에 일렬로 서 있는 책장 곳곳은 비어 있던 그 방.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지.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요노스케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가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현재의 인물들은 요노스케와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한다. 각자 회상하는 시간은 제각각이지만 요노스케를 떠올리는 인물들은 모두 웃고 있다. 각기 다른 시간, 각기 다른 관계로 요노스케를 만났지만, 하나같이 그래 그런 녀석이 있었지. 독특하지만 좋은 녀석이었어. 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요노스케는 타임머신 같은 인물이다.
기분 좋은 순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신비한 인물인 요노스케는 어떤 사람일까? 쇼코는 그를 떠올리며 '너무 평범해서 웃음이 나오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또 다른 친구는 '요노스케를 아는 것만으로 남들보다 득을 본 것 같다'고 말한다. 평범하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 웃음이 나오고, 득을 본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사람. 우리 주변에 따뜻한 마음을 지닌 평범한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일 것이다.
먼지가 나풀거리던 그 방, 내가 그 얘를 기억하듯 그 얘도 나를 기억해줄까?
젊은이들은 즐거웠던 한 때로 되돌려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나이든 이들은 기억할 즐거운 추억이 많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