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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튼 아카데미>, 내 외로움은 특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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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큐

나는 내 생일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 카카오톡 프로필에서도 페이스북에서도 생일을 모두 비공개 상태로 바꿨다. 차라리 아무도 내 생일을 모르도록. 기다림에 시들어버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바람으로도 바스라질 만큼 위태로웠다. 앞으로도 그렇게 내 앞에 남은 모든 생일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었다.



모두가 기다리는 즐거운 날, 그날이 누군가에게는 고독함을 홀로 견뎌야 하는 순간일 지도 모른다. 명문 사립 바튼 학교에 재학 중인 앵거스 털리가 그러했듯이. 털리는 기대했던 바와 달리 크리스마스를 학교에서 보내게 되었다. 엄마가 새아버지와 신혼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친아빠가 있는데도 새아버지만 챙기는 엄마에게 털리는 서운함을 느낀다. 10대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다소 큰 외로움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외로움, 누구나 겪는 것 아닌가?


나는 2월생이다. 그렇다 보니 생일을 학기 중에 맞아본 적이 없다. 학기 중에 생일인 친구들은 생일 파티도 하고, 교실에서 축하도 받기도 했는데,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어린 시절 나의 눈에는 학기 중에 생일을 맞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나도 생일이 방학만 아니었더라면 친구들의 축하를 받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었던 2010년대 초, 아직 페이스북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페이스북은 생일이 되면 주변인들에게 알람이 갔다. 담벼락에는 생일을 축하해주는 글과 댓글로 채워졌다. 약간의 기대감으로 상기 되었다. 학창시절과는 달랐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내 지인들에게 내 생일 알람이 자동으로 발송된다. 내 담벼락에도 생일 축하글이 올라오겠지? 하지만, 기대감은 혼자서 사라졌다. 내 생일에는 나는 니 생일 축하해줬는데 너는 왜 내 생일 축하 안 해주냐고 따지기에도 애매한 비참함이 가득했다. 그뒤로 SNS와 메신저에서 생일 알림 옵션을 모두 꺼버렸다.


모두가 즐거운 것 같을 때, 나는 홀로라는 것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러니까 생일은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날이었다. 그렇게 생일은 점점 싫은 날이 되어갔다.



<바튼 아카데미>에는 3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가족 없이 혼자라는 기분인 털리, 아들을 잃고 혼자가 된 주방장 메리,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따돌림당하는 역사 교사 폴까지 모두 혼자인 사람들. 때로는 아픔이라는 것이 훈장처럼 나를 남과 구분 지어주는 특별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느껴질 때, 타인을 배척하고 혼자가 된다. 그러나 결코 아픔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2주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크리스마스 방학 동안 주인공 일행이 배운 것은, 슬픔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프다. 각자는 각자 일인 분의 아픔을 지니고 산다.


동기들보다 늦게 입대를 하고 복학을 하니, 학교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복수전공으로 본전공 수업을 거의 듣지 않다보니 학과 사람들과 교류할 일도 적었다. 조용히 학기를 채우고 졸업하는 것이 목표인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동기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날 밤, 나는 엉엉 울었다. 나도 너만큼이나 외로웠다는 친구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미안했다. 그래 너도 나만큼 외로웠구나. 그때 나도 너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구나.


시간이 지난 지금, 인정하게 되었다. 생일주간 여러번의 생일파티를 하는 저 친구도, 축하를 넘칠 만큼 받은 저 친구도 나만큼 외로운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 혼자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똑같은 외로움을 껴안고 산다. 그저 가끔 남에게 작은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충분하다. 온전히 혼자인 나라도 누군가에게는 온기를 전해줄 수 있다.



PS. 나의 생일은 보통 입춘이다.(올해는 입춘이 아니라 조금 섭섭한 마음이다.) 한로로의 <입춘>이라는 노래를 알게 된 이후로 내 생일을 좋아해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가장 유명한 노래가 내 생일이라니. 이렇게 내 생일을 좋아할 작은 이유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written by.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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