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까지 가고서야 깨달았다. 이는 용기와 솔직함이라는 걸
상처를 내보인다는 것은 나약한 게 아니다. 그 사람이 용기 있고 솔직하다는 증거다.
우리 사회는 상처를 감출 것을 강요한다. 간혹 사람들이 혹자의 상처를 약점으로 삼아 공격하기 때문이다.
상처와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들 상처를 감추기에 급급하다. 혹은 아픔 따위 없는 척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 간다. 어쩌면 치열한 이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우리는 기억조차 흐릿한 어릴 때부터 경쟁을 강요 받아 왔다. 자매, 형제와 부모님의 애정을 두고 싸움을 벌였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 성적 전쟁을 치뤘을 수도 있다. 이는 물흐르듯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한 발 멈춰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눈치 채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들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주입시키는 사회 분위기다. 또 마음의 상처와 아픔은 누구도 알지 못하게 꼭꼭 숨기라고도 한다. 이 말들은 참 모순된다.
진정 나를 위한다면 아픔과 상처를 꺼내 보이고 더 이상 곪지 않도록 치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경쟁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상처를 숨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상처를 받고 이를 털어 놓는 것은 절대 나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순수하고 솔직하다는 것이다. 상처 받았음을 인정하고 이를 보듬으려는 시도를 누가 나약함으로 규정할 수 있으랴.
그 어떤 아픔과 상처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걸 외면하고 숨기려 하는 것이야 말로 나약함이다.
나는 오랜 기간 동안 상처를 외면하고 숨기며 살아 왔다. 사랑 받지 못했다는, 사랑 받기 위해 부던히 노력해 왔던 자신을 완전히 부정했다.
무서웠다. 이 아픔을 누군가에게 들키면 불쌍한 사람으로 전락할 것 같았다. 사랑이 부족해 끝내 우울증이라는 늪에 빠진 사람. 살 쪘다는 말이 무서워 섭식장애를 앓은 사람. 그 꼬리표가 죽도록 싫었다.
하지만 상처는 외면할 수록 커져 갔다. 이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그토록 숨겼건만 이제는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고서야 상처를 내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상처를 내보이는 것은 나약함이 아닌 솔직함과 용기있는 삶이란 걸.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