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사랑과 예술, 오만함, 그리고 편협한 위선 우리는 그 어디에
나는 항상 제목을 정해두고 글을 쓰지 않는다
제목이 곧 글의 방향성을 가둬두는 것 같아서
미련하게 글의 색을 붙잡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네 생각이 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여름이 끝나지 않아서
난 지독한 여름 냄새를 맡는다
안고 싶은 여름 냄새가 지겹고 역해
사랑하는 내 안에 잡히지 않던 여름이
이번에도 끝나가서
이젠 계절이 지겹고 역하다
맴도는 이름에겐 감정이 느껴지지 않지만
그 얼굴을 보면 짜증이 나서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얼굴을 그리고
코를 그리고
이름을 그렸다
잔상만 남은 얼굴이라 마음이 허할 때나 생각나는
네가
여전히 첫사랑의 낭만은 유효하며 우월하다고
느끼는 나에게 멍청함의 지수를 따지면
높은 수치를 자랑하겠지
나는 우리가 섞은 말 중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대부분이라기보단 전부 잊어버렸다
네가 남긴 13글자로 이루어진 한마디를 제외하곤
모든 걸 잊어버렸다
누굴 만나도 네가 준 이기적인 다정함만큼 따뜻하지 않고
심장 부근에 시큰하게 잠든 영혼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말 따뜻하고 포근해도 온도를 느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불행한지 넌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의 결점에 취약하여 아름다운 것만 사랑하는 편식가인 내가
비위가 약해 사람을 깊이 사랑할 수 없다는 걸 넌
알고 있어
동시에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도 넌
이미 알고 있다
돌아가는 선풍기의 소리도
글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어 튼 밴드의 노래도
지금 내가 적어 내리는 모종의 긴 글마저도
영혼의 온도를 느낄 수 없는 내가 뜨거운 여름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고 있다
무표정으로 써내리는 글에는
연민과 그리움만이 남았으니까
내 글은 항상 불안정할 때 완성되니까
여름은 정말 불안정한 계절이야
여름이 끝나버린 10월은 지독하게 미운 계절이다
우중충한 감정을 노래하는 밴드의 노래도
좋은 노래기에 마음에 든다며 기타를 치고 불렀던
그 노래도
전부 너를 잊어버리길 원치 않아서 했던 거겠지
증오하는 사람이 뒤돌면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과 증오를 부르고 또 써 내려간다
이름 없는 글과 노래는 파생지를 잃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
아름다움을 남기는 행위를 불행할 때만 할 수 있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
인간에게 빠져 죽을 때 가장 아름다워지는 것 또한
비로소 인간이다
사랑을 글로 표현한다면 이렇게나 거추장스러운 단어가 많아지는데
나는 길고 거추장스러운 문장을 스스럼없이 사랑한다
모두가 자야 할 새벽에 잠들지 못하고 사색에 빠져
몽상을 하고
그런 여름에 덥다고 말하며 사랑을 묘사하고
더운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면서도 사랑을 묘사하는
나는 덥다
예술은 모두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나 즐기는 거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에서만 가능한 게 예술이다
위선적이고 제 주제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그리는 내 글도
모두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창조되는 거다
편협한 세계에 갇혀 그들에게 비교질이나 당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들이지
우습게도 그들은 모방당한 자신의 삶을 또다시 예술에게서 위로받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작가도 나를 비교질 삼아 글에 올렸다
난 곧 문장 토시 하나 남기지 않고 외워버릴 정도로 그 글을 사랑하게 되었고
문장을 씹어 삼키며 당신의 세계를 미워하고 동경했다
사랑이라는 건 도무지 이해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내 사랑의 기준이 지극히 높은 탓인지
사랑한다는 말은 내 영혼을 팔아도 아깝지 않다는 말로 해석되는데
감히 누가 사랑을 쉬이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남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건 죽어도 좋다는 말 아닌가
그 정도의 무게감도 없이 체온의 관계를 지양하고 다닌다는 오만함이 뇌를 지배한다
세상의 사랑은 전부
기괴하고 기이하게 변질된 것 같아서
아무도 내 사랑을 이해할 수 없고
나 또한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숨을 먹어
심장에 섞어도
단 하나를 제외하고선 사랑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의 결점을 보면 관계의 유지성을 토하듯 뱉어내는나라서
마약을 한 것처럼 돌아버리지 않는 이상
사랑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사랑을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