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친구
나는 8살 때 서울로 이사를 왔다. 어려운 형편이었는 데도 아버지는 우리를 가르치고 싶어서 서울로 이사를 하셨던 것 같다.
방 3개와 부엌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마당도 손바닥만 했고 그 끝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대문을 나서면 작은 도랑이 있었고, 도랑을 건너면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브로크 공장이었다.
넓은 터 한가운데에는 모래가 산만큼 높이 쌓여있었다.
낮에는 많은 아저씨들이 하얀 러닝셔츠만 입고 브로크를 만드느라고 부지런히 일했다. 그러나 아저씨들이 모두 퇴근한 밤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이는 놀이터가 되었다. 나도 밤마다 그 모래 위에서 놀았다. 난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엄마에게 야단을 맞곤 했다. 언젠가는 운동화를 잃어버리고 와서 회초리를 맞기도 하였다. 그때는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가난한 살림에 운동화 값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 말을 잘 듣지 않아서 회초리를 맞았던 기억도 많다. 엄마도 내가 고집이 세어서 많이 맞고 컸다고 회상했었다.
몇 집 앞의 구멍가게를 지날 때마다 먹고 싶었던 크림빵, 오빠 심부름으로 드나들던 만화가게, 동네에서 가장 큰 집에 모여서 보던 텔레비전, 울타리가 온통 빨간 장미로 가득했던 장미나무집, 그리고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종옥이.
우리는 항상 붙어 다녔다. 학교를 오갈 때, 고무줄놀이를 할 때도, 나물을 캐러 갈 때도 항상 함께 다녔다.
그녀는 엄마와 둘이 살았는데 그녀의 엄마는 거의 집에 없었다. 그녀는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는 데도 집안 일도 야무지게 잘했고 놀이를 할 때도 남자아이들에게도 지지 않았다. 난 좀 겁이 많아서 그녀에게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그녀와 같이 다니는 것이 든든하고 편안했던 것이다.
수십 년 전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던 그 작은 집의 추억이 너무도 그립다. 30대였던 , 항상 바쁘셨던 아버지와 좀 무섭고 까다로웠던 엄마, 이불속에 누워서 만화책을 보던 언니 오빠, 엄마만 없으면 달려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종옥이.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인 데도, 난 그냥 작은 한 아이였고, 산처럼 높은 모래 위를 뛰어다니며 신발 감추기 놀이를 하고, 두꺼비 집을 짓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이사를 갔다. 난 그 집 앞에서 울고만 있었다. 종옥이는 구석에서 울고 있는 내게 다가와, 이다음에 커서 다시 만나자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었다.
열 살 어린 시절,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했던 그녀.
그녀와의 따뜻한 추억이 있기에 50년이 흐른 지금도 그 시절이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열 살 어린 소녀의 친구였던 그녀가 아직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