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잠시 끊긴 순간, 좀 견뎌요

말주변 없어도 대화 잘 이어나갈 수 있어요

by 숭늉

대화의 핑퐁이 오가다가 잠시 상대의 '하하, 맞아요.'로 마무리가 된 순간에, 소심(小心)인들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듭니다. 상대 기색을 흘긋 살폈더니 대화를 잠깐 쉬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저쪽도 다음 얘기를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죠. 이 와중에 길어지는 정적이 불편하기 그지없어서, 의미 없이 스마트폰을 슬쩍 보면서도 머리는 팽글팽글 이야깃거리를 떠올리죠. 공감 못하시겠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다지 소심하지 않습니다. 이 글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타고나길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렸던 저는 27년간 대화의 노하우를 많이 연구했습니다. 다이어트 비결은 태생적으로 날씬한 사람보단 살을 많이 뺀 사람이, 화장 기술은 타고난 미모의 소유자보다 평범한 외모를 가꿔나간 사람이 더 전문가이기 마련이지요. 대화의 기술도 사회성의 달란트를 받은 사람보다 없어서 연구한 사람이 더 빠삭합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일단 가장 중요한 얘기부터 하고 시작할게요. 얘기가 잠시 끊겼는데, 그 이후 상대방이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면 편하게 보게 내버려두고 우리도 그냥 핸드폰 보면 됩니다. 저에게는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을 버릴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어요. 대학생 시절 용기 내어 나갔던 모임에서 다 같이 술을 마신 후 해산하는 상황이었죠. 혼자 조용히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어머, 하필 한 언니랑 방향이 겹쳐버렸지 뭐예요. 대화가 어쩐지 매끄럽지 않고 쉽게 끊기는 느낌이었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살리려 부단히 노력하던 저에게 언니가 조용히 말했죠.

"미안, 지금 머리 아파서 좀 조용히 가고 싶어."

으음, 아주 많이 머쓱한 순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술을 잔뜩 마신 사람에게 뭔 대화를 그렇게 이어나가려 했을까, 싶어요. 아무튼 이젠 얼굴도 기억 안나는 그 언니는 제게 고마운 사람입니다. 덕분에 중요한 원칙 하나를 알게 되었잖아요.


"노력해도 대화가 자꾸 끊긴다면, 그건 나 혼자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상대와의 대화는,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노동이죠. 누군가가 노동에서 잠시 쉬려는 기색을 보일 때 굳이 열심히 소환하지 말아요. 이쪽도 기쁘게 쉬면 됩니다.


그렇지만 때론 서로 얘기를 재밌게 잘하다 정말 그 대화소재의 운명이 다해서 끊길 때도 있죠. 친구가 남자친구를 사귄 썰을 들으면서 어떻게 만났는지, 직업은 뭔지, 첫 고백은 언제 받았는지, 애칭은 무엇인지, 어떤 데이트를 주로 하는지까지 들었다면 더 물어볼 질문도 생각 안 나기 마련이에요. 이럴 때, 카페라면 아주 유용한 꿀팁이 있습니다. 케이크를 하나 주문하는 거예요!

갑자기 웬, 설마 축하 케이크이냐고요? 아뇨, 앞에도 말했지만 대화는 즐거운 노동입니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요. 공부도 당떨어지면 힘들고 일할 때도 커피 안 마시면 멍하잖아요. 얘기하다가 할 말도 생각 안 나고 피곤하면 그거 당떨어진 거예요. 디저트 먹으면서 충전부터 하고 얘기하든 말든 하자구요.


이건 논스톱으로 수다를 3시간쯤 떨었을 때의 꿀팁이고요. 앞서 말했듯 가벼운 대화가 잠깐 끊겨서 서로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타이밍이라면, 여기 몇 가지 주제 후보 리스트들이 있습니다.


1. 우리 집 고양이가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토크

2. 며칠 전 있었던 톱스타 A군 열애설 이야기

3. 상대방의 취미인 서핑에 대한 질문


사실 당연히 정답은 없어요. 애초에 대화가 편한 사람은 소재를 크게 타지 않습니다. 우리 집 고양이의 귀여운 버릇도, 톱스타의 충격 열애설도, 다 훌륭한 얘깃거리예요. 하지만 내가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에 능하지 않고 하필 상대방이 고양이와 A군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질문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질문을 하느냐예요.


서핑에 대해 질문을 할 때, '서핑은 요새 어때?'라고 질문하는 게 가장 쉽습니다. 왜 쉽겠어요. 이건 상대가 머리를 써야 하는 질문입니다. "계속 잘하고 있어" 외의 대답을 하려면 서핑이란 소재 안에서 이야깃거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광범위한 질문도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에 능한 사람과 대화할 때나, 혹은 '어서 내 이야기를 물어봐줘!'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엔 꽤 효과적입니다. 그렇지만 말주변이 썩 없는 사람들끼리 만날 때가 늘 어려운 법이지요. 내가 말하는 게 어렵다면, 적어도 상대방이 신나게 말할 수 있게 판은 예쁘게 깔아줘야 합니다.


앞선 예시에서, 상대가 서핑에 대해 분명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한 적이 있을 겁니다. 거기서 착안해서 "맞아, 저번에"의 스킬을 써보는 거예요.

"맞아, 저번에 서핑에서 만나서 친해졌다던 그 여자분이랑은 요새도 연락해?"

"맞아, 그때 서핑하다가 좀 다쳤다고 한 곳은 이제 나았어?"

"맞아, 요새도 서핑하러 강원도 쪽에 자주 가?"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상대방 이야기를 회상해 질문을 꺼내는 것이 귀찮고, '이렇게까지 해서 대화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렇지만 네, 대화는 노력이 맞아요. 그리고 이런 질문들을 통해 '내가 너의 얘기를 늘 관심 있게 듣고 있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죠. 우리는 모두 관심을 바라기에, 누군가 내 얘기를 귀담아듣는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는 꽤나 신나 할 겁니다.


여기서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칫 카페가 취조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자아를 지운 채 질문과 리액션의 무한 굴레만 반복하다 집에 오는 수가 생기죠. 저도 많이 해봤습니다. 그럼 이 함정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건 다음 편에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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