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건 잘하는데 내 얘기가 어려워요

편하게 얘기하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by 숭늉

앞선 글에서 말주변이 없으면 상대방이 신나게 얘기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방법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질문과 대답과 리액션이 일방적으로 반복되면 그건 뭐, 인터뷰 내지는 취조에 불과하죠. 결국 내 얘기도 하는 게 맞아요.


일단 상대방의 얘기를 열심히 물어봐주고 맞장구도 쳐줘 보세요.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대화의 공을 한 번은 넘길 겁니다. (신나서 유퀴즈에 온 마냥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은 자주 보지 말아요. 유느님도 돈 받고 인터뷰합니다.) 이제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을 자연스럽게 하면 돼요. 그런데 말주변이 없으면 살을 '적당히' 붙여 말하는 것도 어렵죠. 담백하다 못해 지나친 단답에 대화의 맥이 끊기거나, 지난주에 병원 갔던 에피소드를 출발한 순간부터 얘기하다가 상대의 동태눈을 보고 급하게 마무리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수도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하나입니다. 양보다 질이에요. 길게 얘기하면서 재미없는 것보단 짧더라도 유머를 섞어 얘기하는 게 백배 나아요. 알맹이가 분명치 않은 얘기를 늘어놓으면 리액션의 부담이 상대에게 오롯이 갑니다. 이쪽에서 짧든 길든 유머를 섞는다면, 상대는 그냥 편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사람 다 똑같아서, 내가 얘기할 때 상대도 뭐라고 대답할지 눈알 굴리고 있을 거잖아요? 그 부담을 이쪽에서 없애주는 겁니다. '조용하게 듣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은근히 웃기잖아?'라는 인식은 덤이구요.


이까지 온 우리 소심(小心)인들이 꽤나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양반아, 내가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면 이 글을 읽고 있었겠냐고! 걱정 말아요. 말주변보다 유머 늘리는 게 쉽습니다. 그리고 개그맨 뺨치는 유머를 갖추는 게 우리의 목표는 아니잖아요. 대화 분위기 편안하게 만드는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말주변 없는 제가 대화에서 먹고사는 몇 가지 기술이 있는데, 앞으로 차차 하나씩 소개해볼게요.


우선 첫 번째 기술은, '자기 객관화'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강력한 기술이죠. 예를 들어 볼게요.

최근에 사주를 보러 갔다 온 얘기를 주절주절 했다 합시다. 그런데 좀 길어졌어요...사주에 관심 없는 친구는 "와, 신기하다"만 반복하고 있네요. 이때 "너무 내 얘기를 많이 했네"라며 사과하는 대신 신랄한 자기 객관화를 해보는 겁니다.

"아, 내가 사주에 또 과몰입해서 신나게 얘기해 버렸네, 이러다 몇 년 안에 내가 점집 차릴 것 같아."


흠, 텍스트로는 느낌이 안 사네요... 실제로 제 친구가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말 그대로 빵! 터졌었습니다. 굉장히 센스 있는 한 마디였어요. 토픽을 깔끔히 마무리하면서 본인의 과몰입을 자각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말이었죠.


이런 자기 객관화의 기술은 언제든 쓰면 좋습니다. 마치 샌드위치에 넣으면 한 끗을 더해주는 치즈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맥앤치즈에는 치즈가 필수이듯, 이 기술이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소위 말해, '편한 사이었다면 상대가 팩폭했을 순간'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회사에 상습적으로 지각하다 상사에게 된통 혼나 동기에게 구시렁거렸어요, 근데 솔직히 내가 잘못하긴 했습니다.(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먼저 본인을 되돌아볼 시간입니다. 유머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럴 때 "근데 내가 생각해도 자주 늦긴했다...내가 팀장님이라면 그저께 혼냈을 거야."라며 장난스레 참회의 표정을 짓는 거예요. '지가 매일 늦어놓고는...'이란 말을 목구멍에서 꿀떡꿀떡 삼키고 있던 동기도 알긴 아네, 싶으면서 편하게 웃을 수 있겠죠.


이 기술의 예술적인 부분은 '방금 내가 한 말은 좀 그랬다'하는 순간에, 그 상황에 대한 수정 버튼을 만들어준다는 겁니다. 괜히 다른 사람 흉봤다가 후회되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속으로만 후회하지 말고, 바로 덧붙여요. "근데 사실 뭐, 남 얘기하기 전에 나부터 잘해야지." 적어도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똥 묻는 개는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윗 두 문단의 내용입니다. 아무리 많은 자기 계발서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어도 인생에 변화가 없는 이유는 언제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말해놓고도 머쓱한, 괜히 말했다! 의 순간에 자기 객관화를 기억하세요. 은근한 메타인지도 뽐낼 수 있고, 상황도 유쾌하게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대화가 어려운 소심인들에겐 이러한 유머의 기술들이 특히 유용합니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어줄 치트키들이랄까요. 이제 생각하니 유머보단 너스레란 이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객관화를 넘어선 지나친 셀프디스는 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반응하기 곤란해져요. 뭐든지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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