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버린 ‘당연한 한 가지’
케냐 여행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근무 중인 남편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비자했어?”
그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자.
그 단어를 듣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밖에 있다가 집으로 미친 듯이 뛰어들어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노트북부터 켰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이 떨렸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정신없는 상태.
눈은 모니터를 쫓는데, 머리는 공백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케냐 비자는 도착 최소 3일 전 신청 필수.
나는 D-1에 그것을 알게 됐다.
짐도 다 쌌고, 항공권도 발권했고, 호텔도 예약 완료.
그런데 비자? 이게 빠졌다고?
온몸에서 진땀이 흘렀다.
대학교는 러시아에서 나왔고, 매년 학생비자를 직접 챙겼다.
휴직 직전에는 미국 출장을 준비하며
여러 명의 비자, 항공, 숙소, 차량 예약까지 혼자 다 했다.
그런 내가, 지금…?
신청서를 쓰는 내내 마음은 붕 떠 있었다.
결제 단계에서 가격을 보고 한 번 더 멘붕.
일반 신청은 90달러.
급행은 390달러.
물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급행으로 신청을 마치고 나니 상태는 여전히 pending.
다행히 비행기는 밤 출발이라 시간적 여유는 조금 있었지만,
‘비자가 승인되지 않으면 어쩌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다행히 하나는 있었다.
아들은 이날 나와 함께 골프를 치고 와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효자 아들.
적어도 방해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나는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사실 나는 지금 휴직 중이다.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쉬는 시간을 갖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 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회사에 있을 땐 항상 To-do 리스트를 빼곡히 적고,
그걸 우선순위로 정리해 빠르게 처리하는 게 나였다.
그 습관이 몸에 너무 깊이 배어 있었다.
휴직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들 사교육 계획, 내 자아개발,
가족의 6개월치 여행 일정,
아이 8월 등원 준비까지
이집트 생활을 ‘업무’처럼 살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을까.
비자 하나 놓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모든 걸 의심하게 됐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이며 살고 있을까.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과연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을까?
사소한 실수가 알려준 신호.
진짜 쉼이 필요하다는 몸과 마음의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이번 비자 사건은 어쩌면
‘완벽’이 아닌 ‘여유’가 필요한 시기라는
나 자신과의 대화였는지도.
지금도 비자는 아직 pending 상태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오늘만큼은 괜찮다고,
조금 느려도, 잠시 멈춰도 된다고
나 스스로를 토닥이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