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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Mar 25. 2021

조제

조제만 남고, 호랑이와 물고기가 사라진 자리에


국내에서 리메이크한 조제와 일본 원작은 사실

제목도 다르지만, 시작점부터 다르다.

제목 컷팅이라니 오 안 돼 그거 중요한 거야!!!

현실을 살아가는 사는 츠네오의 시점(몽타주)과

소설 속에 사는 조제의 내레이션 대비를 통해 그들을 소개하는 독특한 오프닝에 비해

리메이크에서는 유모차가 아닌 휠체어를 탄 조제가 길바닥에 엎어지고 그걸 본 훈남 대학생이 백마 탄 왕자처럼 구해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왜 한국의 멜로는 우연으로 시작해
신파로 끝나는가


하나, 휠체어와 유모차


영화에서 이 두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원작에서 할머니가 조제를 태우고 다닌 유모차는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과잉보호된 공간이다. 츠네오가 유모차에 스케이드 보드를 달아서 할머니 몰래 조제를 데리고 나간다는 것도, 그 유모차가 풀밭으로 엎어진다는 것도, 단순하게 보면 둘만의 추억이 되겠지만 이 사건은 조제가

사람들 눈을 피해서 다니던 이전과는 달리, 할머니의 손을 떠나 둘만의 관계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본격적인 둘만의 세상이 시작되니까. 원작에서 할머니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제를 각박한 현실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집과 유모차에 가두고 성숙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심리적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메이크에서는 할머니는 그저 동거인일 뿐이고 남주를 밀어내는 것도 조제 스스로이다. 보육원에서 바퀴벌레 약을 타서 원장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으로 본인 스스로 가두고 세상에 나오길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훈남한테 미쳐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감정의 서사가 이곳에 깃들어 있다.


둘, 우연과 인연 사이


원작에서 츠네오는 도박장에서 알바 중인 대학생이다.

그는 손님들에게 유모차 안에 재산을 숨기고 있는 할머니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는데 도박장에서 키우는 개를 산책시키러 나왔다가 우연히 유모차 사고를 목격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할머니의 유모차 안에 소중한 재산인 손녀 쿠미코(조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유일한 사람이다. 

그 일로 츠네오는 조제의 집에서 밥까지 얻어먹게 되고 그녀에 대해 편견 없이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

조제의 집 분위기는 허름해도 굉장히 밝은 편이다.
요리 레시피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벽과 단추로 눈을 단 토끼 인형이나 헌책들까지 나름 개성 있고 빈티지한 분위기가 그녀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조제의 요리 솜씨에 츠네오가 매력을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꿀맛 같은 밥상이었고


그런데 리메이크에서는 집안 전체가 냄새날 듯 어둡고
심지어 테이프로 칭칭 감은 밥상다리는 위태로웠으며
정말 독이라도 탔을 것 같은 요상한 된장국이 나온다. 구질함의 끝이다. 심지어 고아원 원장을 독살할뻔한 그녀에게 동정이 아닌 매력을 느낀 부분이라고 한다면 더 요상하다. 물건을 주워온다는 할머니 캐릭터를 살려 시력검사판으로 부엌 찬장을 만들고 스팸을 다리미로 굽는다는 아이디어만 참신했던, 참고로 스팸은 요리가 아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고 혼자 밥도 해 먹는 캐릭터가 비싼 스팸이나 다리미로 굽고 있는 거 공감이 안 된다, 안일하다.


또한 원작에서는 조제가 궁금해져서 자꾸만 찾아가는 건 츠네오의 마음이고 발걸음이었다. 찾아올 수 없는 조제 대신 자신이 먼저 찾아가는 발길에서 이미 동정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런데 리메이크에서는 우연한 휠체어  사고,
고장 난 휠체어와 리어카, 휠체어를 고쳐주겠다며 혹은, 우연히 다시 본 할머니를 따라 다시 조제네 집에 찾아가고 원작처럼 엄마 반찬 나눠주는 게 아닌 명절 선물로 받은 필요 없는 스팸 갖다 주는 걸 보면 남주는 그냥 우울한 현실에서 더 우울한 현실을 사는 조제에게로 도피하고 싶은 어린 사내의 호기심으로 비칠 뿐이었다.


셋, 그의 마음


원작에서는 츠네오가 섹스파트너도 애인도 있는 소위 캐주얼한 관계를 선호하는 캐릭터이지만 리메이크에서는 교수님과 학점 혹은 취직 때문에 섹스를 하는 찌질한 대학생으로 나온다. 거기에 썸녀까지 있어서 이 영화, 남주의 연애담인가 싶었다. 원작에서 츠네오가 럭비를 그만둔 이유를 통해 결국 조제를 놓겠구나 싶은 복선의 지점이 있는데 리메이크에서는 도무지 남주의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현실에 찌들어 살지만 동정심 많고

인기 많은 공대생이랄까. 여기서 더 중요한 건 그런 남주의 베드신들은 다 어디로 갖다 버린 것이란 말이냐. 그에게 섹스는 성장의 지표기도 하다. 섹파와의 캐주얼한 섹스나 자신을 좋아하는 후배와의 가벼운 키스는 조제와 나눈 것들과는 다른 의미의 연애였으니까.


감성적인 영화로 만들기 위해
자극적인 베드신은 지웠다?
사실 베드신이 있다고 자극적인 게 아니다.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단순한 신파로 내동댕이치는 것이 자극적인 것이다

여주의 시점과 내레이션이 꽤 많이 나오는 걸 보면 분명 여주 시점으로 영화를 진행한다는 것일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내면이나 성장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 일까. 장애를 안고 살던 여주의 일상에 남주가 들어온 것으로 시작하면 어땠을까? 예쁜 장애인과 훈남 대학생의 사랑 말고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처럼 차라리.


넷, 조제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읽으며 세상을 알아가는 조제는 요리를 좋아하고, 프랑스에 가고 싶고 토카레프라는 총을 사고 싶어 하고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하는 그래서 속편을 읽고 싶지만 아직 읽지 못한, 무언가를 계속 갈망하는 캐릭터가 나온다. 그런 그녀를 위해 츠네오가 헌 책방에서 책을 구해다 주고 그 책을 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랑을 배워가는 조제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둘의 사랑이 어떻게 끝날지 아니 둘의 사랑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지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리메이크에서는 조제는 술을 좋아해서 스코틀랜드에 가고 싶어 하며 (감독의 버킷리스트인가 위스키 회사의 피피엘인가? 스팸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조제의 예쁜 얼굴 말고는 도무지 매력을 느낄만한 부분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히 자신이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혼혈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구라(?) 친 것뿐만 아니라 매사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빈 위스키 병을 모으며 위스키를 먹어보지도 않고서도 향기만으로 신의 물방울처럼 테이스팅 노트를 맞추는 건 재능(?)에 가까워서 새로운 직업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였다.

원작에서의 조제는 책을 통해 지식뿐 아니라 세상을 들여다보는 통찰력까지 돋보이는데 리메이크에선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특히 그런 조제의 사유가 영화를 관통하며 묻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단순히 장애인으로 살아와서 어둡고 시니컬한 캐릭터만 엿보인다는 점이 아쉬웠다.


다섯, 감정의 테이크


원작에서 남주를 밀어내던 조제가 다리를 질질 끌고 기어가 가려던 츠네오를 끌어안는 롱테이크 씬이 있다. 그 장면에서 그녀의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지는데 리메이크에서는 조제가 어찌나 빠르게 휠체어에 타서 나왔는지 오히려 남주가 기어서 나가고 있었나 싶었다.

이어지는 장면은 여주에게 멋있게 걸어가는 왕자님과의 키스. 잘생기고 예쁜 두 사람의 클로즈업. 눈은 펄펄 내리고 음악은 애달프고 아 감독이 어지간히 예쁜 장면을 구현하고 싶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있어야 할 두 사람의 아름다운 베드신은 삭제되고 그 후에 좋았어?라는 남성 중심적인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구린 장면만 이어진다.


여섯, 호랑이


호랑이는 조제가 무서워하면서도 보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두려움(현실)과 맞서는 조제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리메이크에서는 조제가 창문 너머 환상으로 호랑이를 보는데 문득 조제의 정신에 문제가 생겼나 싶었다. 왜 리메이크 속 조제는 호랑이를 환상으로 보는 걸까. 두려움은 환상이라는 걸 내포하는 걸까. 그러니까 사랑도 환상일 뿐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건가 그냥 원작에 호랑이가 나왔으니 옜다하고 호랑이 궁둥이나 보여주는 건가. 환상 속에서 구라나 치는 <조제>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일곱, 둘만의 추억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둘만의 추억이다. 모든 이들이 아는 이야기는 추억이 될 수 없다. 오랜만에 조제를 만난 츠네오는 조제가 읽고 있던 누군가의 교과서를 통해 둘만 아는 비밀이 생긴다. 한자를 잘못 쓰는 교과서의 주인이 대학은 같을까, 라든지 교과서 주인이 SM잡지를 좋아한다던지 하는, 조제의 이야기 덕분에 그녀와 헤어진 후, 우연히 대학 후배의 이름을 듣고 교과서 주인을 떠올리곤 그가 간신히 잊고 있던 조제를 떠올리게 했다며 따귀를 후려치는 장면에서 츠네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리메이크에서는 남주의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놀이동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관람차는 멜로물의 전형적인 클리셰가 아닌가. 감독은 한국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담아냈지만 그들의 사랑까지는 담을 수 없었던 걸까.


여덟, 물고기


원작을 훼손한 부분들은 곳곳에 있는데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원작에서는 못 갔던 수족관으로 데이트를 가서 조제가 실없는 소리나 하고 있던 장면이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원작에서 츠네오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여정을 통해 두 사람의 감정 어떻게 소용돌이치고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신나 하는 조제에게 짜증을 부린다던지 조제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보기 위해 수족관에 들렀는데 휴관이라 못 보게 되자 조제가 실망하고 떼를 쓰며 츠네오를 지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일은 결국 부모님 댁 대신 바다에 들렀다가 물고기 모텔까지 가게 된 계기가 되고 조제는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 대신 무드 등이 비추는 물고기들을 보며 혼자였을 때는 몰랐던 외로움을 이제는 알아버려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담히 살아갈 거라는 대사를 관조적이게 읊는다. 조제의 대사는 거의 시에 가까운데 사실 그 장면이 좋아서 이 영화를 다시 볼 정도였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살 수 없고 물속으로 들어간 인간 역시 살 수 없음을 깨달은 조제가 인어 같던 장면 었으니까.


아홉. 바운더리


원작에는 주변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도박장 사람들과 조제네 옆집 꼬맹이들, 변태 아저씨, 남주의 동생이나, 조제의 양아들이라든지 그들과의 관계를 통한 서브텍스트가 존재하는데 리메이크에는 딱히 기억날만한 인물들이 없다. 조제의 양아들만 원작에서 가져왔는데 원작에서는 애정결핍으로 난폭하지만 조제를 업고 보육원을 탈출할 정도의 특별한 관계지만 리메이크에서는 그저 조제에게 병신 같은 년이라는 워딩을 쓰는 양아치로 그려지는 것도 아쉽다. 또한 썸녀가 조제를 찾아와서 조제에게 다리 없는 네가 부럽다며 비아냥거리고 조제는 지지 않고 그럼 너도 다리를 자르라던 조제의 뺨을 후려치고 한 번은 제 뺨을 대주는 장면들도 캐릭터의 성격과 진심을 잘 보여주는 장면인데 리메이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원작에는 돌봐야 하는 개와 분양하는 강아지들을 등장시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감독의 메타포도 있다.


열, 엔딩

원작에서 두 사람은 몇 달 같이 살았고, 담백하게 헤어졌고!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츠네오는 불현듯 밀려오는 이별에 펑펑 울며 헤어짐을 감당하고 있었고 조제는 전동 휠체어를 끌고 세상을 달리며 혼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의자에서 바닥으로 다이빙하며 끝나는, 지속되는 엔딩과는 달리 리메이크에서는 신파의 극치를 보여준다.

 썸녀와 결혼을 하는 남주혁과 차를 몰고 여행을 떠나는 조제. 호랑이 궁둥이만큼이나 뜬금없는 물고기 펜던트를 룸미러에 단 채 한낱 연애담으로 날려버리는 엔딩이라니. 도무지 둘이 어쩌다 사랑하게(?) 됐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동정인가 외모인가?) 왜 헤어지는 건지 왜 남주가 그녀 곁을 떠나게 된 건지 영화에서는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고 ‘그래서 현재’로만 건너뛴다. 너네도 원작 봤지? 그래서 헤어진 거라고 감독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니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요?

리메이크를 하는 경우에서 욕을 덜 먹을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로 본다. 하나, 원작을 그대로 가져와 충실히 따른다. 시대에 맞게 세련되게 다듬거나 문화에 맞게 윤색한다.

둘, 중심 사건과 주제는 그대로 가져가되 원작을 새롭게 분석하거나 해석할만한 새로운 영화로 만든다. 그러나 리메이크를 보고 나면 감독이 원작을 분석하긴 했는지 모티브만 가져오기로 한 건지, 그렇다면 굳이 조제라고 할 것도 없이 장애 있는 여성과 훈남의 사랑으로 그려도 될 것을, 무튼 너무 많이 덜어 내다 못해 두 남녀의 성장보다 로맨스와 신파에 치중한 과오를 범하고 만다. 캐릭터들의 매력들이 지워지고 배우들의 예쁜 외모만 클로즈업으로 남았다. 조제만 남고, 호랑이와 물고기가 사라진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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