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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Apr 11. 2021

낙원의 밤

낙원의 민낯

그러니까 말이야 홍대 이자카야에서 먹는
오코노미야끼 같은 맛이랄까 너 그거
일본 가서 먹으면 아예 다른 요리인 거 알아?

대사 하며 분위기 하며 쌍팔년도 누아르를 보는 것 같았다 출처가 불분명한 짜장면처럼


레트로가 유행이라 톤을 그리 잡았나 보다 했다 워낙 무간도 짭탱인 <신세계>가 나쁘지 않아서 <마녀>를 봤다가 상당히 유치해서 당황하고 <V.I.P> 보고 감독이 어지간히 쑤시는 거 좋아하는구나 했었는데 이 영화는 마녀와 브이아이피의 중간이랄까 감독의 거품이 이제야 벗겨지는 건가 싶다 그렇게 별로였냐고 묻는다면,


"아니 이거를 입봉작으로 만들었으면 잘 만든 거고 박 감독이 만든 거면 안일했다는 거지."


사실 캐스팅만 보고도 어떤 그림이겠구나 각이 딱 나와서 마음을 내려놓고 보다가 영혼도 내려놓게 된 영화다


《누아르의 클리셰》

*말을 뱉는 순간 이뤄지는 기적의 씬들


1) 초반에 남주가 누나랑 조카랑 차 태워 보낼 때부터  뒤집어지는 거 아니야 했는데 3분 뒤, 뒤집어짐
2) 제주도에서 저러다 여주 삼촌 뒤지겠네 하고 곧 뒤짐
3) 마이사(차승원)가 태구에게 주겠다는 선물, 누나 조카 죽인 건 우리가 아니라 xx이다 말해주나 했더니 밝힘
4) 여주 총질 잘하니 막판에 총질로 다 죽이겠네 빙고!
5) 아, 초반에 사우나에서 냉탕 간다 할 때도 칼 숨겨놓은 거 찾으러 가냐 했더니 역시나 가 역시나


아니 쑤시는 것도 쑤시는 거지만 누아르라고 해서 잔인하게 쑤셔 재끼는 거 박 감독은 적당히 좀 했으면 싶다 심지어 난 고어를 좋아하지만 미학 없는 잔혹은 눈살만 찌푸리게 할 뿐


《대사의 디테일》


여주가 시한부에 이판사판 싹수없는 설정이라고 해도
밥상에서 너무 당당히 남주한테 면박 주고 선 긋는데 차라리 혼잣말로 대사 치고 그다음에 선을 그었으면 대사도 덜 튀고 좋았을 텐데 싶다


"있잖아요 여주가 남주한테 무슨 사고 쳤냐면서 시비터는 거 남녀 간의 긴장을 주기 위해서 설정한 거라는 거 사실 티가 나서 어색한 거예요 연기하는 거 티나면 연기가 어색하듯"

(남주의 발음이 뭉개져서 아쉬웠다는 분들도 있었는데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들으면 잘들린다) 

남주, 여주가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됐을 때 인간의 외로움, 증오, 삶과 죽음 같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자신들에 앞에 놓인 죽음에만 충실하거나 가벼운 대사들은 캐릭터적으로 아쉽다


그럼에도 배드신이 없는 건 신기하다 요즘 대세인
여성향 누아르를 표방해서 그렇다고? 과연?



《배드신


여자가 자자고 해도 자기도 취향이 있다며 안 자는 남주,
키~야 남자도 존심이 이기야, 이것이야말로 남자의 순정이라고 감독이 시나리오 쓰며 자화자찬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둘의 애정이 우정 그 이상이었다면 혹은 조금이라도 끌렸다면 여주가 어차피 죽을 건데 섹스라도 하자고 했을 때 머뭇거리는 남주에게 오히려 여주가 쿨하게 다가가 키스하고 섹스까지 리드했다면 어땠을까?

 그마저도 그 둘을 우정이나 플라토닉 혹은 로맨스로 묶고 싶었다면 여자가 혼자 있기 싫어서 그러는구나 싶어 오히려 손만 잡고 잘게 시전 그건 됐고 잠이나 자라면서 머리 쓰담해주면서 재우고 자다가 아파하면 간호라도 해줬다면 베드신 없이도 충분히 두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씬이 됐겠지만.

태구가 죽을 때 둘이 나누는 대화는 갑자기 영웅본색에 나올 것 같은 대사를 친다 마이사가 너네 둘이 사귀냐고 물을 때 심지어 여주는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둘사이에는 끈끈한 우정도 끈적한 사랑도 없었다는 것이 감정선을 끊어버리게 한다

남녀 간의 우정이라도 보여주고자 했다면 오히려 앞에서 티격태격하는 씬보다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 의리를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끌려서는 안되는 서로에게 끌렸던 거라면 그것만의 감정선을 보여줬어야한다 그저 쿨한 척, 하는 대사를 치기보다는

《카 액션》


그나마 사우나신 칼침만큼 마음에 든 액션이 카 액션이다 시원하게 따라붙고 박고 엉켜붙었다가 떨어진다 숨막히게 섹시한 씬이었다 그래 심지어 테넷 카 액션보다 좋았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모두하고있습니까>장면이 겹쳐서 도대체 이 영화 기타노 다케시 오마주인가 아니면 감독이 느와르를 연구한답시고 다케시 영화를 열편쯤 보고 꾼 꿈으로 창조한 무의식적 오마주 시나리오인가 놀라고 있다


《아이러니》


1

여주가 남주한텐 이상하지 않냐면서 공항 가면 뒤진다고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기어코 공항 가고 여주는 남주가 가지 말라는 농장에 가서 기꺼이 미끼가 된다니!


2
농장에서 남주 여주 만나서 괜찮냐는 드립이 꽤 긴데 빌런들이 그래 니들 대사 쳐라 내버려 두는 거 폭소 포인트!


3
그리 총 잘 쏘는 여주가 농장에서 남주 죽어가는데 하지 마 하지 마 밖에 못하는 거 그거 사이다 엔딩을 위한 거냐
근데 감도 좋은 분이 총도 안 챙겨서 농장에 간 것 자체가,


《엔딩》


전체적으로 예상 가능한 뻔한 누아르지만 그래도 배우들 연기 보는 맛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클라이맥스로 치달을수록 과도하게 웅장한 음악이 귀에 거슬렸지만,
막판에 시원하게 갈기는 여주 총질을 보고 있으면 모든 장면이 이 엔딩을 위한 서사처럼 느껴질 정도.


"저거 보여주려고 남주를 그렇게 작살냈냐" 


《배우》


나름의 자기 룰이 있는 마이사(차승원) 빌런은 사실 비열한 양 사장(박호산) 빌런과는 달리 약속도 잘 키는 타입이다 막판에 자신에게 총구가 겨눠졌을 때도 비굴하게  안 내고 자신도 계산할 게 있지라면서 담담히 대사 치는  멋있는데 차승원이니까 낼 수 있는 멋이랄까 박호산은 여기서 비열한 연기의 끝을 보여준다


양 사장 때문에 마이사 딥빡 하는 씬들이 킬링 포인트!


전여빈은 특유의 냉소적인 표정과 반항적인 캐릭터로 전형적인 예쁜 여주를 벗어난다 끝으로 엄태구, 차이나타운에서 엄태구 보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의리 있던 캐릭터가 너무 섹시해서 누아르의 주인공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역시 주인공이 되었다


저 남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늘 말했던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 해도 난 당신을 사랑해"

라고 고백하고 싶은 전형적인 캐릭터랄까


+ 여주 캐릭터가 25살 미만인 것 같은데 시나리오 상으로는 더 어린 느낌이다 19살도 가능할, 반항적인 캐릭터에 꼬맹이라고 불리는 점 남주와 배드신도 없고 총 쏘는 일 외에는 딱히 싸움도 잘 못하는, (러시아에서 유명하던 삼촌 밑에서 자랐다면 적어도 급소 공격이나 방어능력은 가르쳐줬어야 하는...) 25세 이상으로 보이는 전여빈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는데 전여빈이 죄 많은 소녀에서 워낙 고등학생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캐스팅된 것 같다 어차피 뻔하게 갈 거면 김고은 같은 느낌의 고등학생으로 갔...


《오마주》


+ 기타노다케시의 영화를 오마주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던건, 톤이 조폭영화 느낌보다 일본 야쿠지 느와르영화에 가까워서였고 <그 여름 조용한 바다>, <아웃레이지>나 <하나비>같은 다케시의 느와르와  오버랩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국 누아르는 분위기와 대사로 압도했던 《달콤한 인생》만 한 게 없다 잔인한 씬 없이도 감정선과 음악과 분위기로 조지는 영화였으니 몇년전 개봉한 《독전》 또한 홍콩 영화 <마약전쟁>의 리메이크였었지만 원작과는 다른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한국 누아르의 지평을 열었다고 본다


느와르 본질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다 홍콩식이든 일본식이든 러시아든 이탈리아든, 뒤범벅이 되어있어도 중요한 것은 맛이다, 맛이 있어야 사람들의 오감을 사로 잡는 법이다


낙원의 밤,

전형적인 누아르라 볼만은 했고

전형적인 누아르라 아쉬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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