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마치 세례 받은 예수처럼 물 밖으로 나오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는 고양이를 따라갔다가 고통 속에 지친 여주와 조우한다 자신을 따라오는 그가 부담스럽다
빗소리 덕분에 침묵에서 잠시 벗어나 그와 커뮤니케이션을 한 그녀는 결국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들은 천둥소리에 맞춰 문을 부수고 천둥소리에 묻히게 비명을 질러본다 소리 내지 못하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에게는 크나큰 폭력이다 소리 내면 죽는다는 폭력 가운데 놓인 그들의 고통이 극장 안에 울려 퍼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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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여자는 P피자가게에 가기 위해 잠든 그를 두고 거리로 나온다 시인답게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다시 자신 앞에 서 있는 그를 보고 놀란다 책더미는 쏟아지고 괴물들에게 좌표가 찍힌 그들은 죽어라 도망차다 지하철로 숨어든 그들은 하류를 따라 흘러간다 그들을 쫓던 괴물도 물속에 빠지는 순간 헤엄치지 못해 어쩌면 물속에서 호흡을 참지를 못해 죽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교회 그곳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얻는다 그리고 고통가운데 있는 그녀를 위해 예수, 아니 변호사는 약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따라와 함께해 준 고양이를 구하려 통조림 공장 터에 갔다가 코코넛 기름을 먹던 괴물들의 식사가 될뻔하지만 결국 고양이를 품에 안고 교회로 돌아와 그녀에게 약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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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고양이를 왜 데리고 다니냐고 민폐라는 말도
봤는데 사실 고양이는 영화 내내 침묵한다_말 못 하는 짐승 즉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약한 존재일 뿐이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걸 안다는 듯이 그저 인간의 곁에서 위로가 되어준다 그것만으로 우리가 동물을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오히려 지랄발광하며 모두에게 민폐이자 위협이 된 건 인간이었고 그는 흑인 아버지에게 맞고 나서야 조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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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고양이는 하나님처럼 느껴졌다 죄인인 내 곁에서 위로가 되어주고 예수를 친구처럼 곁에 붙여주고 죽음을 앞둔 인간이자 약한 자를 위해 지금도 신약과 구약을 옆구리에 붙여주시는, 작가가 의도한 메타포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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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마침내 피자가게에 도착하지만 가게는 이미 불타고 없다 과거나 추억은 시간이 흐르면 퇴색되고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녜에게 피자는 노스탤지어이자 버킷리스트였다 아버지의 피아노 공연이 끝나면 함께 먹은 기억에 이곳까지 왔다는 걸 알게 된 변호사는 그녀의 아버지가 연주하셨던 바를 함께 찾아가 마술쇼도 보여주고 다른 가게의 피자를 구해다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