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포에 갇힌 실낙원
I.
그동안 박찬욱 감독의 세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이 주로 등장했다 15년 동안 이유도 모른 채 지하 감옥에 갇혀있던 오대수(올드보이), 범죄자대신 억울하게 옥에 갇힌 금자씨(친절한 금자씨), 자신이 사이보그라 믿는 정신병자(사이보그지만 괜찮아),1930년대 아가씨를 사랑한 여종(아가씨), 뱀파이어가 된 신부와 그 신부를 꼬셔 뱀파이어가 된 여성(박쥐)까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도 결국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들 대부분은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심지어 다소 연극적이고 작위적이었어도 매력적이었다
II.
홍상수식 치정영화를 박찬욱 톤으로 오마주한 듯한 <헤어진 결심>에서 서래가 파는 모래 무덤을 보며 불륜이어도 사랑이라면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되물었다면 봉준호식 기생충을 오마주한 듯한 이번 영화는 무엇을 되묻고 있는가
자신이 왜 경쟁자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지 그 심리와 사건을 쫓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가족과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까지 가정과 시대와 인간의 본성을 메타포 하느라 그들의 심리를 공감할 겨를이 없다
III.
중산층, 네 식구, 자폐적인 성향의 막내와 아내의 팬티, 인디언 복장(포카혼타스라 주장하는), 정원 있는 집, 해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기생충을 떠올렸듯 나 역시도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예술은 늘 그렇듯 이전 것에 자신의 것을 더하며 새로워지기도 한다 그것을 관객이 새롭게 느낄지는 미지수일 뿐이다 장르가 코미디가 아닌 블랙코미디였다면 어땠을까 진지한데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유머만 슬쩍 보이고 전체극은 범죄물로 갔다면 지루하지는 않았을지도
IV.
제지, 분재, 해고, 살처분, 벌목, AI... 등등 끝없는 메타포의 향연이 스치는 동안 정작 주인공이 왜 살인을 벌이는지에 대해서는 당위성이 미흡하게 느껴진다
술만 마시면 깨어나는 본성을 좀 더 초반부터 보여줬다든지 아니면 애초에 감정에 건조한 사이코패스였다든지 (가족들은 그가 그저 시니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겠지만) 그를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람인데 원작처럼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넣으려니 공감대가 무너진 게 아닐까 일반인들은 누굴 죽여서 그 자리에 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하니까
V.
만수는 뱀 같은 장어를 먹고 하와처럼 눈이 뜨이고 뱀에 물리고도 살아남는다 실낙원에 있는 그는 선택받지 못한 가인처럼 아벨들을 살인하고 다닌다 만수가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관객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느꼈어야 하지만 정반대의 감정이 들었다 제발 아무도 죽이지 말았으면,
VI.
이 영화가 기생충과 닮았지만 다른 이유는 여기서 갈린다 기택의 가족들은 주인집의 가족들과 한가족이 되고 싶어 했고 지하실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려했으나 오해로 머리채를 잡히고 협박을 당하니 어쩔 수가 없이 그들을 가두게 되고 죽이게 되지만 <어쩔 수가 없다>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변명으로 잠재된 폭력성을, 살인의 당위성으로 스스로도 그리고 관객에게도 세뇌시킨다는 점이다
VII.
평범한 인물들이 복수심도 아닌 이기심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다
다들 마음속에 죽이고 싶은 사람 한명 쯤은 있지만, 양심 때문이든, 법 때문이든 실제로는 죽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렇다면 영화 속 만수는 평범한 노동자이자 한 가족의 아버지라는 가장의 캐릭터지만, 내재된 본성이 해방됨으로 평범한 인간 캐릭터에서 벗어난다
감독은 성악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악의 평범성에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만수를 닮지 않았던 양아들이 만수를 닮아간다던지
아빠를 닮았던 친딸이 기어코 본능이자 재능을 드러낸다던지 감독은 정원수, 벌목용 나무, 그리고 분재를 통해 인간에 대해 되묻는다
인간은 선악과처럼 신의 계획에 따라 태어나는 것인가
세상 어딘가에 쓰이기 위해 키워지고 벌목되는 것인가 관상하는 이들을 위해 분재되는 것인가
그러나 당위성이 미흡한 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모른 척하는 과정이 과장되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캐릭터들이 평범한 척하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정도 그렇다 제지공장 말고도 취직할 곳이 없을 리가 없지만 만수는 집착적으로 제지업에 매달린다 인간이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특수제지업을 한 그라면 출판업이나 인쇄업으로도 빠질 수 있다 우리는 IMF시절이 아닌 업계 관련 유튜브를 시작해도 되는 2025년을 살고 있으니까
VIII.
이것을 누군가 말하는 혹 내가 있는 영화업이라고 치환해 보자 나는 왜 영화에 매달리는가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영화업은 제지업과 비교할 수가 없다 3개월이 아닌 3년, 10년, 30년 동안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없다 제지업을 영화산업과 비교할 수가 없다 입봉을 위해서 경쟁자들을 죽일 수 있을까 (그들을 죽이는 것보다 내가 죽는 게 더 빠른 낙원의 길일 것이다) 오히려 극중 딸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하다가 기어코 보여주게 된다가 같은 결일 것이다
만수처럼 살아남는 자들은 타인의 시나리오를 빼앗고 이기적이게 권모술수 하는 만수같은 놈들이겠지만
나 역시 성악설을 믿는다 내게도 악한 본성이 있을 것이다 이기적이고 나만 생각하는 마음, 그러나 인간이라면 그런 마음을 꺾어서라도 분재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IX.
차라리 마음은 제거하고 싶지만 더 나은 도약을 위해
그들을 인터뷰하러 갔다가, 그들의 말이 트리거가 되는 바람에 죽일 수 밖에 없었다면 그다음 인터뷰를 가면서도 이번에는 죽이지 말아야지 아니 또 개소리하면 죽여버릴 거라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소리치면서 미쳐가는 만수를 보여줬다면 범죄영화에 준하는 심리 서스펜스가 쌓이면서 우리는 만수의 살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까?
X.
영화는 결국 우연히 자신들이 죽인 경쟁자들끼리 암투를 벌일만한 관계였다는 게 경찰을 통해 밝혀지는데_상식적으로 경찰들이 증거나 용의점도 없는데 찾아온다는 게 말이 안 된다_증거가 남아도 용의자로 특정 못하는 게 한국의 법이다 오히려 뉴스에서 두 사람 중 한 명이 살해됐고 용의자로 같은 회사에 지원했던 누군가가 실종되어서 수사하다 보니 둘이 이미 서로 아는 사람이라 실종자를 용의자로 보고 찾고 있다고_나오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_그걸 본 만수는 더 마음 놓고 다음 인터뷰할 사람을
찾아가지만 매니저 자리를 놓고 갑질하려 드니까 이번엔 여러 변수를 시뮬레이션해서 계획적으로 살해했다면,
XI.
자폐스팩트럼이 있는 딸아이는 마침내 완성한 자신만의 악보로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집착하는 첼로 역시 나무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제지가 되어 휴지부터 책까지
다양한 쓸모를 가지게 되지만 질 좋은 나무는 악기가 된다
만수의 피를 이어받은 딸은 천재적인 재능으로 악기를 통해 예술가가 될 테고 만수는 자신의 강박과 본성을 다스리지 못했으니 소시오패스이자 범죄자로 사는 것이다
X.
곡이 연주되는 동안 장면은
자동화 벌목기기로 나무들이 가차 없이 부러지는
숲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들에 의해 인간조차 지구에서 제거될지도 모른다는
엔딩까지 메타포로 시작해 메타포에 갇혀버린 것도
정말 어쩔 수가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