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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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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Mar 27. 2021

꿈속에선 늘 화장실을 찾는다

20200509


명동에 대만 음식점 거리가 생겼다고 TV에 나왔다

우리도 가자, 동생은 돈 없어서 안된다고 했지만 어느새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이 테이블 가득 앉아서 이것저것을 맛보고 있었다 동생은 투명한 비닐 가방에 담긴 컵라면을 건네며 우리는 이거나 먹자고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사 먹고 싶었다 통장잔고는 만원도 채 안 남았지만,


푸드코트에는 대부분 대만 거리에서 맛볼 수 있는 면 요리나 간식 혹은 분식 같은 음식이었는데 처음 보는 음식들이라 이름조차 생생소했다 동생과 저렴하게 나눠먹을 음식이 뭐가 있을까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둘러보다가 소변이 마려워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 깜박거리는 화장실 표시등을 따라갔다 한평 남짓한 그곳에 의자 두 개 변기 하나가 있었다 분명 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볼일을 보려니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힐끔거려서 도무지 변기에 앉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안 보일 때 서둘러 해결할까 고민하던 찰나, 보안팀이 다가와 다른 건물 화장실로 안내해 줬다 그를 따라 나가자 호텔이 보였다 (언젠가 꿈에서 봤던 호텔이었다 당시에 그곳은 사무실 겸 집이었는데 거기서 영원히 살고 싶었는데) 로비로 들어서자 그는 아까 화장실 때문에 죄송했다며 마사지받으실 때 쓰라며 코럴 빛의 쿠폰 같은 지폐를 두 장 건넸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왜 화장실이 아닌 객실로 가는 걸까 나를 그곳에 묵게 해 주겠다는 건지 나를 손님으로 착각한 건지 모호했다 그때 하늘색 줄무늬 셔츠에 에이프런을 두른 하우스키퍼가 울며불며 이곳에서 잘리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나는 그녀를 안아주며 토닥였다 왠지 그녀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객실에 도착했을 때 불을 끄지 않아 어두웠다 그곳에 마침 엄마가 있었고 나는 투 배드 중 베란다 쪽 배드에 잠들었다

여섯 시 혹은 일곱 시,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베란다 커튼을 열자 아래층 객실과 연결된 야외 풀이 내려다보였다

객실 불을 다 켜자 내부가 선명하게 보였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청소했다 어디든 지저분해지면  죄책감이 들었다 남은 불을 켜다 버튼을 잘못 누르는 바람에 키퍼가 왔다 나는 미안해서 그녀에게 수건 두 개만 달라고 부탁했다 욕실에 수건은 충분했지만 많을수록 안심되는 건 수건 같은 것들 뿐

호텔은 래미안과 같은 삼성 계열 호텔이라고 했다 이런 아파트에 살면 좋겠다 그래 좋겠다 엄마와 나는 부엌 창 너머로 보이는 밖을 내다보았다 이곳은 138층이었고 창밖으로는 100층 미만의 건물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빈민층이 사는 허름한 주택이 젠가처럼 쌓여 위태로워 보였다 그 꼭대기층 마당에 있던 사람들의 형체가 개미처럼 까마득하게 보였다 어지러웠다

엄마 우리 이제 수영하러 가자

시간이 얼마 없었다 퇴실은 아마 오전 11시쯤이겠지 아쉬웠다 문득 이게 서비스로 제공된 객실이 아니면 어쩌지 불안해하며 어제의 명동 대만 음식거리도 잊은 채, 날 기다리고 있던 동생도 잊은 채

그러고 보니 어제 과일 트럭에서 포도 네 송이를 산 기억이 났다 한 송이에 이천오백 원씩, 엄마 아빠랑 나눠먹어야지 냉장고에 쑤셔 넣으며 좋아하는 포도를 싸게 샀다는 기쁨으로 가득했었는데

가난은 꿈속까지 침투한다

빈곤의 농도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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