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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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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Mar 28. 2021

설날

20210101

1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필요 없으니까 여기서 실수인 척 떨어트려 죽이자

눈을 떴을 때 나는 하얀 천에 둘러 쌓인 채 무대 위에 누워있었고 무대는 꽤 높아 보였다 남자 배우 둘이서 연기 연습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 곧 나를 발로 밀어 무대에서 떨어뜨리겠구나 싶었다 알면서도 알아서 서글프면서도 그들 뜻대로 되고 싶지 않아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2
부모님을 따라 이모네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바닷가를 지나고 갯바위를 지나는데
삽살개 한 마리가 물에 빠진 다른 삽살개를 구한 채
헐떡이고 있었다

네가 구한 거야? 잘했다

나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개는 우리 개였고 나는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바닷물로 온몸이 젖은 개를 안고 이모네로 향했다 갯바위를 지나는 동안 비슷한 개들이 서너 마리씩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얘들아 너희까지 다 데리고 갈 순 없어

이모네 집 근처에 얼음으로 만든 벽이 있었다
전기 배관 통로처럼 좁고 낮은 굴을 지나야 했다
개부터 보내고 그곳을 배로 기며 통과하는데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남의 집 담을 무너트리면 어떡하냐며 내 탓을 했다 내가 무거웠던 게 죄는구나 싶었다

3
이십 미터 앞에 대형 문어의 이빨이 보였다 아가리처럼 벌어지더니 그곳으로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언니 빨리 도망쳐요

나만 살아남을 순 없단다 나는
그들과 함께 문어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누군가의 과거가 있었고 우리는
각자 필요한 것을 구하기로 했다

무기로 쓸만한 것
점퍼 같은 보온이 될만한 것을
구해 걸쳐 입고 이곳을 탈출하기로 했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들이 보였다
낯선 얼굴들이지만 어쨌든 그렇대 나를 보는 표정들이 그래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우리는 손에 손잡고 어색하지만 하나가 되었다

나갈 수 있어 걱정 마

누군가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저 멀리 빛이 보였다
커다란 프로펠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장선 남자들은 그 광선에 다가갔다가 감전되어 죽거나 재빠르게 되돌아왔지만 결국 죽어버렸다
이곳은 큐브 혹은 메이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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