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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Sep 17. 2021

말리그넌트

초심으로 돌아간 제임스 완의 마라 맛 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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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페리아

인페르노

페노미나     


어디서 들어봤거나 본 적 있는 영화라면 당신은 호러 마니아일 것이다. 색감도 음악도 화려한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들은 이탈리아 스타일의 공포, [지알로]를 추구한다.


2

다리오 아르젠토는 각본가였다가 스릴러 감독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그의 대표적인 영화는 <서스페리아1977>다. 물론 각본의 개연성은 개나 줘버려 식으로 엉성하지만 ‘지알로’ 무비답게 화려한 조명에 화려한 사운드가 더해져 잔혹한 살인 장면들마저 미학적으로 그려내는 전위적인 영화이다.     


2-1

‘지알로’는 이탈리아어로 노란색을 뜻하며 노란색 표지의 저가의 범죄소설이 ‘마리오 바바’라는 감독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영화를 지알로 스타일의 영화라고 불리게 되었다. 영화는 살인마와 그에게 쫓기는 여성에 관한 범죄 스릴러이며 가죽장갑, 잔인한 살인 무기 등이 상징처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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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감독으로 유명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서스 페리아 2018>가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다. 지알로 영화들의 최대 단점인 개연성을 부여하고 화려한 조명과 미술, 음악은 살리되 세련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공포영화의 마스터피스라고 본다.


3

제임스 완은 《말리그넌트》에서 공포영화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 페리아]를 한껏 오마주한다.  [서스페리아]의 배경인 예술학교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로 화려하게 장식된 곳이 많은데 [말리그넌트]의 주인공의 집 내부를 보면 뒤뜰로 통하는 문에 난 창이나 거실에 놓인 전등갓이 스테인드글라스이며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경찰서 유리 벽도 화려한 지알로 무비의 미술과 중첩된다. 주인공이 공포의 원흉과 마주할 때마다 붉은 조명으로 비추는데 이것은 다리오의 영화의 특징 중 하나다. 제임스 완은 고전적인 지알로 스타일의 공포와 그가 그동안 주력해온 오컬트 장르의 특징을 적절하게 섞어 관객을 희롱한다.     


3-1

이 영화는 오컬트가 아니다.

오컬트는 이 영화의 맥거핀일 뿐.    

  

3-2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시는 분은 눈을 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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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서 박사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의 환자 에밀리 메이에 대한 연구 및 실험 기록을 녹화하던 중에 사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실험체였던 그것의 힘이 막강해졌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수술 장면들이 몽타주로 이어지고 영화는 현재의 시점으로 건너뛴다. 습관적 유산을 하던 주인공은 남편의 폭력으로 아이도 잃고 찢어진 두피가 자꾸만 벌어지며 피가 나는 일을 겪는다. 한밤의 습격과 그것의 공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그녀는 남편을 죽인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집에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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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은 제목과 오프닝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는데_언제나 영화의 오프닝에는 힌트가 숨겨져 있다_말리 그런트 즉, 악성 종양과 관계된 무언가 겠구나. 일전에 근종 제거 수술한 기억이 있다. 근종의 크기는 생각보다 컸고 악성은 아니었지만 다른 장기들의 자리를 위협하며 생활의 불편과 고통을 주기에 수술이 필요했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바로 <난소 기형종>이다. 만약 내가 단순 근종이 아닌 기형의 종양이 있었다면 수술 후 그 끔찍한 종양_머리카락, 두피, 연골, 치아 등이 뒤섞인_마주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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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 불안과 공포감으로 편집증적으로 종양에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다 알게 된 기형종을 소재로 쓴 시놉시스가 있었기에 영화의 시작부터 그것이 무엇인지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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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그것은 기형종에 머무르지 않고 ‘베니싱 트윈’이라는 설정이 더해져 더욱 그로테스크해진다. 기형의 쌍둥이가 다른 한 명의 쌍둥이에게로 거의 흡수된 기괴한 상태가 그것이다. 그것은 몸이 붙은 채 태어나는 샴쌍둥이가 아닌, fetus-in-fetu 태아 속의 태아 즉, 완전히 제거해야지만 남아있는 쌍둥이가 살 수 있는 종양이다. 모습은 갖추었지만 제 기능을 못 하는 기형종인 테라토마와는 결이 다르다. 이러한 설정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에도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역시 그로테스크의 강국이다. 2016년 [Let Her Out 베니싱 트윈] : 강간당한 여성에게 태어나고 사고로 인해 몸 안에 그것과 마주하는 설정과 매우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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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서 몽타주로 봤던 제거 수술로 기형의 쌍둥이는 주인공의 등에서 팔다리와 뼈들이 제거되는데 유일하게 뇌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의 두개골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 봉인된다_오컬트적인 봉인이 아닌, 신체적 봉인이라는 점이 새롭다_그것은 그녀의 뇌에서 살며 말을 걸어오곤 했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섣부르게 그녀가 혼령과 소통하거나 해리성 인격장애일거라고 의심하는 덫에 걸릴 수 있다. 그것이 라디오를 통해 목소리를 내며 전자기기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악령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보면, 영락없는 오컬트 영화다. 극이 진행될수록 당황할 구석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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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속의 친구 '가브리엘'이 깨어나 사달을 일으키는 동안, 그녀는 가위눌림처럼 신체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유체 이탈한 듯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데 도무지 자신에게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견딜 수 없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녀는 유력한 용의자가 될 뿐이다.      


8-1

그것의 이름은 하필 '가브리엘' 천사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이름에도 주목할 점이 있는데 여자 경찰관은 레지나(성녀)이며 주인공의 본명 에밀리(경쟁자) 생모의 이름은 제인 도우(신원불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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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싱 트윈’으로 태어난 아이의 신체 부분 중 일부가 흡수된 아이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뇌에 생긴다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뇌를 공유하기 때문에 해리성 정체감 장애와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한쪽의 무의식이 잠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두 개의 자아가 동시에 있을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뇌의 가능성은 무한하니 한쪽의 컨트롤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는 가능성에 상상력을 부여한 것이라 본다.     


관객들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것만 반복해 만들 테니까.
내 뿌리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을 했다.
-제임스 완          

9

제임스 완의 뿌리란 ‘쏘우’다. 쏘우라는 영화는 엔딩의 반전도 압권이었지만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을 납치해 참 교육시키는 시한부의 닥터가 나온다. 나름 의학적인 지식을 덧댄 공포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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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우는 비디오무비 시절 처키, 스크림,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이후로 내게 가장 무섭고 잔인한 공포물이었다. 호러 시나리오를 쓰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감독이기도 하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쏘우 시리즈의 기획 이후 [인시디어스]라는 오컬트 영화를 시작으로 웰메이드 호러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다. 특히 컨저링은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공포물로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공포의 심리를 가장 잘 그린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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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호러 장르를 잠시 떠나 [분노의 질주 7]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제임스 완의 능력은 인간들의 심리를 쪼는 서스펜스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퇴마 씬에서 보여주던 액티브한 연출을 액션물에서 확장시킨다. 역시 감각적인 감독은 장르를 넘나 든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다. 이후 자신이 변주한 오컬트 세계관들을 확장하지만, 기획과 제작에만 힘쓴 탓인지 그의 이름을 걸고 나와서 기대감을 한껏 줘놓고 그가 연출한 건 아니지 식의_문득 랑종이 떠오른다_다소 나이브하고 비슷한 느낌의 영화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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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완은 [아쿠아맨]이라는 액션 히어로물을 찍은 뒤 본격적으로 자신이 제작하는 공포물에 액션을 집어넣기 시작한다_지루해지면 큰 거 하나씩 찍는 듯_[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그가 연출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영화의 각본에 주로 참여하는 데이비드 레슬리 존슨이 이 영화의 각본을 맡아 쓴 것을 보면 다소 기획된 판에 감독만 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다. 참고로 레슬리 작가는 [오펀: 천사의 비밀]을 쓴 작가이다. 그 이후로 컨저링 시리즈 각본에도 참여하고 아쿠아맨도 썼다_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컨저링 3은 공포의 근원에게 쫓기는 장면보다 빙의된 주인공의 액션과 퇴마 장면에서 보여주는 액션이 민망할 정도로 과하다. 액션 호러 장르라고 불러야 활 정도. 이런 제임스 완의 오컬트 세계관에서는 빙의-퇴마-가족애라는 클리셰 같은 공식들이 이어지며 심리적 공포물에서 오컬트 공포를 표방한 액션물로 진화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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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에스터 감독이 [유전]이라는 영화로 이런 공식을 깨부숴줬지만, 그것보다 의미 있는 것은 유전 이후로 오컬트 영화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점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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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그넌트]는 폭력으로 시작한다.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그녀의 두개골 안에 잠들어있던 악성 종양이 악마에 가까운 기형의 존재로 깨어난다. 심리적인 PTSD가 물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발현되는 순간이다. 강간범, 아동학대, 가정폭력이라는 소재들은 이 사회에 악성 종양에 가까운 범죄다. 어쩌면 제임스 완은 공포라는 장르를 빌려와 어른들을 위한 가족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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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증적인 내 성격에는 다소 호불호 갈리는 영화지만 호러 마니아라면 고전부터 현대를 아우르는 공포물의 모든 재료가 들어간, 마라 맛 영화인 [말리그넌트]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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