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일
<당신의 생일>
당신의 나이가 몇 인 지도 잊었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오늘. 당신 닮아 창백한 초 달랑 두 개 켜놓고 어둠이 다 타서 녹아내리도록 석고처럼 곧게 앉아 당신의 이름만 불러봅니다.
당신 앞에 술 한 잔 권해 놓고서, 그리도 싫어하셨던 깡소주를 사발로 들이켜대도 한마디도 꾸짖지 않는 당신. 비워지지 않는 당신 잔 가득 그리움만 무시로 쏟아냅니다.
눈물을 감추는 마른기침에, 켜놓은 촛불이 가물대는 건, 거기서도 놓지 않는 당신 걱정인 줄 내가 압니다. 당신을 바라보듯 하는 나의 응시에 당신이 와 있다고 소리 없는 외침으로 흔들리는 줄 내가 압니다.
첫닭이 서럽게 우는 시간엔 당신 울기만 하다 가야 하기에 보내고 또 보내도 끝내는 보내야 하는 줄 내가 알기에 당신 앞에 놓인 촛불을 차마 끄지 못하고 가시는 발걸음으로 그저 밟고 가시기를 원해봅니다.
좁은 방 어둠, 끝내는 다 태우고서 당신이 또 나를 떠나갑니다.
당신의 나이를 잊었습니다.
내 나이도 잊기로 했습니다.
/외별/
시작노트 :
오래전. 치매에 걸린 아내의 병시중을 내내 들어오다가 가망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팔순 노부부가 서로의 몸을 묶고서 동반 자살을 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자살이란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없어질 때 유난히 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은 뒷골목에서 쉬쉬하는 지경을 넘어서 엄연한 현실이 되어버린 듯하여 우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얼마나 사랑했으면 한날한시에 죽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런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절로 붉어지더군요. 결혼은 더디 하고 이혼은 급히 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 된 요즘 세태 속에서... 인스턴트식 사랑이 판치는 요즘 세태 속에서 곱씹어 볼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더랬습니다.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의 고통은 얼마나 큰 것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신화처럼 축적된 케케묵은 윤리에 의한 강요된 수절이라면 고통스러운 것이겠지만, 너무도 사랑하였기에, 더 이상 다른 어떤 사람과의 혼인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의 고통은 불행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으로 인한 마음의 빈자리는 어쩌면 다른 것으로 채울 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그 자체로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객쩍은 생각도 해봤습니다. 사별한 후에 맞는 사랑하는 이의 생일. 그 감회를 상상하여 적어보았지만 겪지 않은 일을 미루어 짐작한다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