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難解詩論 no.2 _ 窓>과 해설
<難解詩論 no.2 _ 窓>
나, 바람으로
그대의 창을 찾았을 때,
그대는 아직 나를 열지 않았다
계절마다 꽃이 피고 또 지고,
내게서 나를 벗어놓은,
나의 무리들이, 묵은 꽃잎처럼 지고,
굳게 입을 닫은 창엔
태초처럼 빛과 어둠만 있었다
바람의 그림자로만 남아도
나는, 나를 떠날 수 없고
아이디와 패스워드 위에
흥건하게, 말라붙은 그리움은
부동의 기다림을 견디게 했다
벽이 된 창 뒤에서
시간을 지운 시간, 바위가 되고
나를 지운 나, 모래가 되는
/畏瞥/
<자작시 해설>
이 시는 제목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난해함’을 표방하는 시가 아니라, 난해해질 수밖에 없는 상태 그 자체를 견디는 시이기를 바랐습니다.
나의 이와 같은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겹겹이 싸매두었던 은유 중에서 몇 개의 핵심적인 내용을 풀어 설명함으로써 난해의 외투를 벗겨내어 내가 내밀하게 의도했던 글의 내면을 드러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나의 해설은 작가의 시점에서 분석하여 기술한 것으로서 읽는 독자의 독자적 해석까지를 부인하거나 포괄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1. 화자의 정체 : “나, 바람으로”
시의 첫 문장은 이미 실패한 접속을 전제합니다.
"나, 바람으로 그대의 창을 찾았을 때, 그대는 아직 나를 열지 않았다"
‘바람’은 형체 없는 접근, 폭력 아닌 침투, 거절당해도 흔적만 남기는 존재입니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유리를 밀지 않으며, 오직 열려 있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방식입니다. 즉 화자는 처음부터, 주체적 침입자가 아니라, 열림에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비극은 “거절”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은 상태의 지속”에 있습니다.
2. ‘나의 무리들’ : 자기 분열과 탈락의 이미지
"내게서 나를 벗어놓은, 나의 무리들이, 묵은 꽃잎처럼 지고"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무리들’은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나, 가능태의 나, 관계 속에서 파생된 나들입니다. 즉 ‘내게서 나를 벗어놓은’은 자아가 자아를 배출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묵은 꽃잎'은 한때는 피었으나 지금은 기능을 잃은 감정 또는 정체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창이 열리지 않는 동안, 화자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계속 벗겨 왔고, 그 결과 남은 것은 핵심만 남은 바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의도한 바를 쓰기 위해서, 다음 행은 반드시 필요한 구절입니다.
"굳게 입을 닫은 창엔 태초처럼 빛과 어둠만 있었다"
여기서 ‘태초’는 시작이 아니라 의미 이전의 상태,
관계 이전, 이름 이전의 세계입니다. 창은 더 이상 ‘그대의 창’이 아니라 존재론적 경계가 됩니다.
3. “바람의 그림자” : 최소 존재로서의 집착
"바람의 그림자로만 남아도 / 나는, 나를 떠날 수 없고"
화자는 더 이상 접속을 원하지 않습니다. 존재의 최솟값으로라도 남고 싶은 상태입니다. '바람'은 실체 없음을 의미하고, '바람의 그림자'는 존재의 흔적조차 희미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떠날 수 없다”는 말은 이 집착이 사랑이나 욕망이 아니라 존재 유지 본능에 가깝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4. 현대적 상징 : 아이디와 패스워드
시실 이번에 올린 글은 퇴고 1차 버전입니다. 퇴고를 거치기 이전의 윈본에서 본 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늑골과 척추만 남더라도
내 속으로 뽑아 올린
그리움의 수액은"
하지만 해당 구절은 애절하긴 해도 다소 상투적인 느낌이고 감정의 전개가 닫힌 흐름으로 되어 글의 확장성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아래와 같이 수정하였습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 위에 / 흥건하게, 말라붙은 그리움은"
나는 이 퇴고 1차 버전의 구절을 통해 시 의미의 확장성을 확보하고 나이가 시간성을 결정짓는 장치로 삼고 싶었습니다. 이전까지의 ‘창’이 은유였다면, 여기서 창은 명백히 디지털화된 접속 창구가 됩니다.
즉, '아이디/패스워드'는 '허가된 접근' '말라붙은 그리움'은 '반복 입력된 실패, 삭제되지 않는 감정 캐시'로 확장되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움은 흐르지 못하고 고착됩니다. 그래서 다음 행이 나옵니다.
"부동의 기다림을 견디게 했다"
이는, 기다림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역설을 말하며 이 시 전체에서 가장 차가운 문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마지막 연 : 바위가 되는 윤리
"벽이 된 창 뒤에서 / 시간을 지운 시간, 바위가 되고 / 나를 지운 나, 모래가 되는"
이 결말은 절망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변경입니다. '시간을 지운 시간'은 '체험되지 않는 시간'을 말하며 '나를 지운 나'는 '관계로 정의되던 자아의 삭제', '바위'는 '더 이상 열림을 요구하지 않는 존재'로서 바위는 기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거절당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응답받을 가능성도 포기한 상태라 할 것입니다.
나는 이 시에서 “왜 닫힌 창을 떠나지 못하는가”를 묻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를 통해서 “열림에 의해만 존재하던 존재가, 열림 없이 어떻게 버틸 것인가”를 묻고자 했던 것입니다
특히 ‘아이디와 패스워드’와 ‘바위’의 연결을 통해
이 시대적 고독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이상에서 저는 저의 시를 차갑게 해부하기 위해 나와 내 글을 최대한 객관화시켰습니다.
많은 시간을 부여하고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아직 나의 문학적 내공이 가쁜 호흡을 감당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까닭일 겁니다.
부디 난해시를 표방한 글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었던 설명이었기를 바라며 긴 글을 닫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6- 01- 21/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