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난해시론 no.6 _ 문. 턱>
<難解詩論 no.6 _ 문, 턱>
아직 열지 않은 문은
손잡이만 남아,
내가 살아 있는 쪽으로
조금씩 기울었다
문에는
안과 밖도 아닌, 오간 흔적만으로
잘려나간 손들의 알리바이를
증거하고 있는데
열지 않아도,
문은 이미 문을 다했고
나는, 넘지 않아도 되는 경계 앞에서
처음으로 시간을 세웠다
뒤에서, 아무도 부르지 않았고
앞에서, 누구도 막아서지 않았다
그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건,
오롯이 내 선택,
허락은 없다
/畏瞥/
<자작시 해설>
나의 이 시에서 내가 주목하고자 했던 것은 ‘문을 여는 행위’가 아니라, 문 앞에 서 있는 순간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문을 선택의 상징으로 받아들이지만, 나는 그 문턱 앞에서 잠시 멈춰 선 상태야말로 하나의 완결된 시간이라고 느꼈습니다.
시의 첫 연에서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은 이미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울어짐은 적극적인 초대가 아니라, 손잡이만 남은 최소한의 가능성으로 제시됩니다.
이는 세계가 화자를 부르거나 재촉하지 않는 상태, 다시 말해 살아 있으나 아직 결단하지 않은 현재의 자세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두 번째 연에서 문은 더 이상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간 흔적, 즉, 누군가 지나가며 남긴 상처와 결핍만을 증거 하는 사물로 남아 있습니다.
‘잘려나간 손들’은 통과의 대가로 잃어버린 것들, 혹은 선택 이후에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된 신체적·존재적 일부를 상징합니다. 문은 그 판단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고, 다만 기록처럼 침묵 속에서 남아 있습니다.
세 번째 연에서 나는 중요한 전환점을 두었습니다. 문을 열지 않아도 문은 이미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입니다.
통과하지 않음 역시 하나의 사건이며, 그 앞에서 비로소 화자는 시간을 세기 시작합니다. 이는 행동 이후의 시간이 아니라, 결단 이전의 시간에 대한 자각이며, 성찰이 발생하는 지점이란 인식입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외부의 개입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뒤에서 부르는 이도 없고, 앞에서 막는 이도 없는 상황 속에서 숨을 고르는 일은 오롯이 화자 자신의 몫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는 어떤 허락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자유의 부재가 아니라, 선택이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 상태,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윤리의 자리인 것입니다
나는 이 시에서 문을 넘는 용기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넘지 않아도 되는 경계 앞에서 멈출 수 있는 태도와 그때 발생하는 시간의 감각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이 시는 행동의 시가 아니라 ‘행동 직전의 윤리’에 대한 시이고, 문을 넘지 않는 주체를 비겁하게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넘지 않음으로써 시간을 인식한 존재를 성립시키는 일종의 존재론적 성찰이라 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난해시론 no.6 _ 문, 턱〉은 이동의 詩가 아니라, 멈춤이 하나의 결단이 되는 순간을 다룬 詩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늘 그렇듯, 나의 설명은 난해시를 표방한 작가의 변명이며 최소한의 열쇠입니다. 그것을 비틀거나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독립된 영역입니다. 부디 이 글이 그런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응원에 대한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