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書 10

자작시 <조장鳥葬>과 해설

by 외별

<조장鳥葬>


검은색 돌무더기 위에 으깬 살점 늘어놓고서 어서 오라고 낮게 외치면, 새들은 낮은 바람으로 달려와 단단한 부리 들이밀고서 살 속 시간들을 잘게 부순다



이웃 계집아이와 벌거벗고 뛰놀아도 부끄럽지 않던 시절 고사리 손으로 종이배를 접어 시냇물 위로 띄우고 노을 속으로 사라지도록 노래를 부르던 그때엔 냇물이 하늘로 흐르는 줄 알았다


바람 부는 밤마다 종소리처럼 울던 앞산이 세상의 끝이 아닌 걸 깨달은 날, 아버지를 실은 상여가 종이배가 된 그 고개를 넘어 세상 밖 세상에 처음 나서고, 사람이 사람을 버려야 사람노릇 한다는 사실이 무서워 어릴 적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고개를 넘던 다리(脚)는 피리가 되어 무시로 몸속에서 빈 소리를 울렸다


바람이고 싶었다. 발자국 남기지 않고 길 아닌 길을 걷다가 때로는 향기가 되고 때로는 소리가 되는 바람이고 싶었다.


새들이 살점을 뜯다가 허공으로 흩어지면 남겨진 기억만 앙상하다. 향도 피우지 않은 하늘 희미하게 지워지고, 아이가 바싹 마른 시간을 피리로 불며 새들이 넘는 고개를 터덜터덜 내려가며 늙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있는 오늘이, 정말 살아있음으로 기억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畏瞥/



<자작시해설>


나의 시 〈조장〉은 죽음의 방식에 관한 시이기보다, 기억이 사라지는 방식에 관한 시다.


조장은 살을 남기지 않는 장례다. 새가 와서 뜯고, 바람이 흩뜨리고, 흔적은 하늘로 환원된다. 나는 이 장례 방식을 빌려,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기억에서 지워지고, 또 어떻게 다른 형식으로 남는지를 쓰고 싶었다.


시의 첫 장면에서 새들이 부수는 것은 단순한 살점이 아니다. 그들이 부수는 것은 ‘살 속에 저장된 시간’이다. 인간의 몸은 기억의 저장고이고, 조장은 그 저장고를 강제로 열어 시간들을 잘게 부순다. 죽음은 정리나 보존이 아니라, 해체에 가깝다.


두 번째 연에서 등장하는 유년의 기억은 의도적으로 밝고 가볍다. 벌거벗고 뛰놀던 시간, 종이배, 노래, 노을. 이 시절의 화자에게 세계는 전도되어 있다. 냇물이 하늘로 흐른다고 믿을 만큼, 위와 아래, 삶과 죽음, 떠남과 도착의 경계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종이배는 놀이이자 믿음이며, 사라져도 괜찮은 것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종이배는 아버지의 상여가 되는 순간, 무게를 얻는다. 유년의 은유였던 것이 현실의 의식이 되는 순간, 화자는 처음으로 ‘세상 밖 세상’을 인식한다. 이때 깨닫게 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사람이 사람을 버려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애도는 사랑의 연장이 아니라, 결국 포기의 한 형식이라는 깨달음이 화자를 두렵게 만든다.


그래서 화자는 돌아가고 싶어 한다. 죽기 전의 고향이 아니라, 버리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로. 그러나 고개를 넘는 순간, 몸은 변형된다. 상여가 넘어간 다리는 더 이상 이동의 기관이 아니라, 속이 빈 피리가 된다. 상실을 통과한 몸은 비어 있고, 그 빈자리를 통해 소리만 울린다.


이후의 화자는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울리는 존재에 가깝다. “바람이고 싶었다”는 고백은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존재, 형태를 갖지 않고 향기나 소리로만 스쳐가는 존재에 대한 동경이다. 조장이 지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상태이기 때문이다. 남지 않음으로써 남는 것, 소멸함으로써 다른 감각으로 전이되는 것.


마지막 연에서 새들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기억조차 점점 앙상해진다. 향도 피우지 않은 하늘은 흐릿해지고, 아이는 마른 시간을 피리로 불며 늙어간다.


이 아이는 과거의 화자이자 현재의 화자이며,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기억 그 자체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몸속에서 반복 재생되며 사람을 늙힌다.


이 시의 마지막 소망은 선언이나 결론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오늘이, 정말 살아있음으로 기억되는 시간이 되기를”이라는 문장은 판단이 아니라 기도에 가깝다.


언젠가 이 시간도 조장처럼 흩어질 것을 알면서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살아 있었던 시간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시 〈조장〉은 죽음을 다룬 시지만, 나는 이 시를 통해 살아 있는 시간의 취약함과 간절함을 쓰고 싶었다. 남기지 않으려 애쓸수록, 우리에게는 과연 무엇이 남는지를 나는 이 시를 통해서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비록 나의 대답은 여전히 공란으로 남겨 있을지라도...



/畏瞥/



<마지막 사족 한 마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은 살아있는 사람도 살아있는 채로 장사를 지내야 할 판인듯 싶다


살아도 산게 아닌 시간, 영혼이나마 새의 힘을 빌어 하늘에 오르길 기원했던 조장의 풍습이 시신을 유린하는 잔인한 것이 아닌, 오히려 자유로운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삶이 너무도 핍진한 까닭이리라

우리가 살아있는 오늘이, 정말 살아있음으로 기억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외별/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