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대 / 이천사 년 시월의 기록
<청년시대 / 이천사 년 시월의 기록>
민통선 근처에서 농사짓고 사시는 박 씨 아저씨가 오셨다. 50을 넘긴 나이에 머리까지 희끗한 것이 수삼년 전에 뵈었을 때보다 사뭇 늙으셨다. 시내 구경이나 시켜드리려고 차에 시동을 거니 막히는 시내에 뭐 하러 차를 몰고 나가냐며 지하철을 이용하자고 하신다. 맞는 말씀인지라 차를 놓고 성큼 앞서 가시는 아저씨 뒤를 따라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가니 노인 한분이 힘겹게 들어오신다. 그 모습을 보던 박 씨 아저씨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을 당신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주변엔 모두 병든 닭들, 일제히 고개를 떨구고 있다. 아저씨도 50 넘은 초로의 분이 힘드시지 않냐고 여쭈었더니 아저씨 동네에서는 청년이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똥장군도 메고 어른 앞에서는 담배도 손에 말아 피신다는 아저씨. 가슴이 넓어 보인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린 것은 병든 닭 한 마리가 졸다가 깨서 통화를 하다가 목청을 높인다. "이 나이에 내가 하리?"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늙어 보인다. 얼굴에서 뭉터기로 빠져나간 정신들이 지하철 바닥에 굴러 떨어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 밤늦도록 넘기는 수험서 책장이 낫처럼 날을 세워 영혼을 빻아댔나 보다. 전화를 마친 닭은 다시 고개를 ㄱ자로 두 번 꺾고서 잠에 취한 채 손에 든 맥도널드 햄버거를 부리로 쪼아댔다.
제복을 입은 학생들이 성냥갑 같은 학원교실에서 눈에 불을 켠다. 나이를 얼마 먹지 않은 늙은 몸뚱이들이 저들이 입고 있는 옷보다 먼저 늙어간다. 꽃잎이 무거운 맨드라미처럼 무겁게.
며칠 더 묵었다 가시라고 붙잡는 내 등을 괜찮다며 툭툭 치신 박 씨 아저씨가 민통선 근처 마을로 돌아간 저녁, 샤워를 하느라 옷을 벗는 나를 보던 아내가 등에 푸른 손자국이 멍들어 있다고 했다. 나는 마대처럼 웃으며 청년시대가 준 훈장이라 말했다. 등짝에서 박 씨 아저씨가 짊어졌던 똥장군 냄새가 오래도록 가시지 않고 베란다에 놓아둔 화분들이 고개를 세웠다. 별이 빛났다 어둠이 깊기에
/2004. 10. 07 /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