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書 17

자작시 <시를 낳다>와 해설

by 외별

<시를 낳다>


혀에 감기는 연시軟枾
정신없이 파먹다가
목에 걸린 것 뱉어 보니
어느 고승의 사리인가

단단히 도사린 감씨 하나
배를 갈라 보니, 아뿔싸
눈부신 은빛 삽자루 하나
날을 세웠다

살을 다 내어 주고도
땅속에 묻혀 생명을 일굴 연장 하나
씨앗 속에 감춰 둔
감, 덩어리



문득, 아랫배 속에서
스멀대는 시屎는
사리 품지 못한, 시時
혹은, 찰나가 출산한
시詩 한 수


/畏瞥/






<자작시 해설>



이 시 <시를 낳다>는 내게 있어서의 시 창작의 본질을 하나의 우화적 이미지 구조로 드러내고자 한 작품입니다. 나는 이 시에서 시가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나만의 시론에 입각하여 설명하기 위해 연시(軟枾)–씨앗–삽–배설–출산이라는 다층적인 은유 구조를 사용하였습니다.


아래에서는 그 의도를 차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1. 연시軟枾의 은유 : 감각적 체험으로서의 언어


혀에 감기는 연시軟枾

정신없이 파먹다가


이 대대목에서 나는 연시軟枾를 등장시켰습니다. 연시는 매우 부드러워 혀에 감기듯 녹아드는 과일입니다. 나는 이 이미지를 통해 언어를 처음 접하는 감각적 경험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시인은 언어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먼저 감각적으로 소비합니다. 마치 사람이 연시를 파먹듯, 시인 역시 세계와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탐닉합니다.


이 장면은 시 창작의 첫 단계인 감각적 몰입을 상징합니다.



2. 목에 걸린 감씨 : 창작의 저항


목에 걸린 것 뱉어 보니

어느 고승의 사리인가


연시를 먹는 행위는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갑자기 목에 걸리는 무엇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씨가 아니라 사리(舍利)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나는 창작의 저항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시인이 언어와 세계를 탐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넘어가지 않는 무엇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흔히 의미의 핵, 혹은 사유의 결절점입니다.


나는 이를 사리라는 불교적 상징으로 표현했습니다. 사리는 수행자가 죽은 뒤 남긴 정수(精髓)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기서의 감씨는 단순한 씨앗이 아니라 사유의 핵심 덩어리입니다.



3. 감씨를 해부하다 : 창작의 폭력성


단단히 도사린 감씨 하나

배를 갈라 보니, 아뿔싸


이 장장면에서 나는 감씨를 해부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시인은 어떤 의미의 씨앗을 발견하면 그것을 존중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고 해체합니다. 이 과정은 일종의 창작의 폭력성입니다.


시인은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쪼개고, 해부하고, 다시 구성합니다.



4. 삽의 등장 : 시 창작은 노동이다


눈부신 은빛 삽자루 하나

날을 세웠다


감씨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씨앗이 아니라 삽입니다. 이것은 이 시의 핵심 은유입니다.


삽은 경작의 도구입니다. 나는 여기서 시 창작을 농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의미의 씨앗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단순히 보존하지 않습니다.

그 씨앗을 통해 땅을 파고 세계를 경작합니다.

이것은 시가 단순한 영감이 아니라 노동과 수행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드러냅니다.



5. 감 덩어리 : 생명의 저장고


살을 다 내어 주고도

땅속에 묻혀 생명을 일굴 연장 하나

씨앗 속에 감춰 둔

감, 덩어리


이 대목에서 나는 감이라는 존재를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생명 장치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감은 자신의 살을 모두 내어 주지만

그 안에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시 창작의 또 다른 본질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소모합니다.

그러나 그 소모 속에는 다음 생명을 낳는 가능성이 숨겨져 있습니다.



6. 시屎 : 창작의 육체성


문득, 아랫배 속에서

스멀대는 시屎는


여기서 나는 의도적으로 시(詩)와 시(屎)를 겹치게 했습니다. 이는 다소 불편한 비유일 수 있지만, 나는 이 장면을 통해 창작의 육체성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시는 초월적 영감만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압력처럼 축적되다가 결국 배출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는 정신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육체의 배설이기도 합니다.



7. 시時 : 시간의 압력


사리 품지 못한, 시時


이 구절에서 나는 시(時)라는 또 다른 동음을 끌어옵니다. 여기서 시는 시간입니다.

시인은 어떤 위대한 사리를 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래도록 시간을 견딥니다.

그 시간이 축적되면서 몸 안에서는 언어의 압력이 형성됩니다.



8. 시詩 : 찰나의 출산


혹은, 찰나가 출산한

시詩 한 수


마마지막에 나는 시의 탄생을 출산으로 표현했습니다. 출산은 오랜 시간의 임신 끝에 일어나는 찰나의 사건입니다.


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의 사유와 체험이 축적된 뒤 어느 순간 한 편의 시가 탄생합니다. 나는 이 장면을 통해 시가 시간의 축적과 찰나의 폭발이 만나는 순간에 태어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9. 결론 : 시는 사리가 아니라 노동의 열매


이 시 전체를 통통해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시 창작은 감각적 체험에서 시작됩니다.

2) 그 과정에서 의미의 씨앗을 만나게 됩니다.

3) 시인은 그것을 해부하고 노동합니다.

4) 그리고 몸과 시간 속에서 축적된 압력이

5) 어느 순간 한 편의 시로 출산됩니다.


따라서 내게 시는 성인의 사리처럼 신성한 유물이 아니라, 몸과 시간과 노동이 빚어낸 하나의 생명 사건입니다.


는 바로 그 과정을 <시를 낳다>라는 우화적 이미지 속에 담아 보고자 했습니다.


나의 시를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이와 같은 나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공유되길 바라며, 긴 글 함께하여 주심에 깊은 감사말씀 전합니다.



/외별/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