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빈집>과 해설
<빈 집>
아버지의 아버지보다
더 늙은 지붕이
그보다 더 늙은 하늘 아래
무심히 잠들고,
마당에서 졸던 개 한 마리,
후드득 떨어진 가을비에
오금을 저리며 짖어대는
저녁
장도리 손에 든 아버지는
삭은 기둥을 안고
겨울 날 걱정에 진땀이 흐르고
진즉 서울로 간 아들은
소식 한 장 없는데
앞마당 감나무,
지나는 바람에
툭,
할아버지 떨구고
/外別/
<자작시 해설>
1. 이 시의 출발점에 대하여
이 시는 어떤 사건을 서술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작품이 아닙니다. 나는 한 채의 낡은 집을 떠올리다가, 그 집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시간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아 있지만, 그 집에는 이미 여러 세대의 삶이 겹겹이 스며 있습니다. 나는 그 겹겹의 시간을 하나의 정지된 풍경 속에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빈 집」은 실제로는 집에 대한 시라기보다, 세대가 지나간 자리의 시간을 포착하려는 시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2. ‘더 늙은 지붕’이라는 이미지
첫 연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제시합니다.
아버지의 아버지보다
더 늙은 지붕이
그보다 더 늙은 하늘 아래
무심히 잠들고
여기서 지붕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세대의 시간을 견뎌온 존재를 상징합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늙어 사라지지만, 집은 그보다 오래 남아 그 시간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나는 지붕의 나이를 인간의 세대와 비교하는 역설적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그보다 더 늙은 하늘’이라는 표현은 인간과 집을 넘어서는 궁극적 시간, 즉 존재를 둘러싼 거대한 자연의 시간을 암시합니다. 이는 인간의 삶이 결국 자연의 시간 속에 잠시 머무는 것에 불과하다는 시적 인식을 드러내려는 시적인 장치였습니다.
3. ‘졸던 개’와 저녁의 불안
다음 장면에서 나는 마당의 개를 등장시킵니다.
마당에서 졸던 개 한 마리,
후드득 떨어진 가을비에
오금을 저리며 짖어대는
저녁
여기서 개는 집의 마지막 감각기관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보다 먼저 집의 변화와 기척을 감지하는 생명체입니다. 나는 ‘졸던’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 집이 이미 정적 속에 잠겨 있는 공간임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가을비가 떨어지면서 그 정적이 깨집니다. 개가 짖는 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집의 고요가 흔들리는 순간을 나타냅니다. 시적 시간으로 보면, 이것은 늙은 집이 서서히 무너져 갈 조짐을 알리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장도리 손에 든 아버지’라는 존재
이 시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장도리 손에 든 아버지는
삭은 기둥을 안고
겨울 날 걱정에 진땀이 흐르고
여기서 장도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고 집을 지켜야 하는 노동의 상징입니다. 나는 ‘기둥을 고친다’라고 쓰지 않고 ‘삭은 기둥을 안고’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집을 수리하는 행위라기보다 무너지는 삶을 부여잡는 몸짓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곧 한국 농촌 세대로 대표되는 이미 오래전에 젊음이 경과한 노년과 장년의 존재 및 현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는 집과 삶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지만, 그 노력은 이미 늙어가는 시간과 싸우는 노동이 되어버렸습니다.
5. ‘서울로 간 아들’이라는 부재
이어지는 구절에서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진즉 서울로 간 아들은
소식 한 장 없는데
이 문장은 의도적으로 설명을 최소화한 구절입니다. 나는 이 한 줄을 통해 도시로 이동한 세대의 부재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들이 떠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떠남이 남겨 놓은 침묵입니다.
즉 이 시의 공간은 이미 세대가 끊어진 집이며, 그 단절은 어떤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조용한 현실로 나타납니다.
6. 감나무와 ‘할아버지’의 은유
마지막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마당 감나무,
지나는 바람에
툭,
할아버지 떨구고
여기서 감나무는 세대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농촌의 집에서 감나무는 종종 가문의 시간과 함께 존재하는 나무입니다. 나는 감이 떨어지는 장면을 통해 세대의 소멸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툭’이라는 의성어는 죽음이나 이별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한 존재가 시간 속에서 조용히 떨어지는 순간을 압축적으로 전달합니다.
따라서 이 장면에서 감은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 세대를 품고 있던 존재, 곧 할아버지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감이 떨어지는 순간은 곧 한 세대의 낙하이기도 합니다.
7. ‘빈 집’이라는 제목의 의미
이 시의 제목은 <빈 집>입니다. 그러나 시 속에서 집은 완전히 비어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있고, 개도 있고, 감나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집을 ‘빈 집’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집에는 이미 사람의 시간이 떠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에서 ‘빈 집’은 단순히 사람이 없는 집이 아니라, 세대의 시간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8. 이 시의 시학적 의도
이 작품을 쓰면서 내가 지향했던 것은 감정을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슬픔을 설명하지 않고, 한 채의 집과 몇 개의 풍경만을 제시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삶이 결국 장면으로 남는 기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낡은 지붕,
비에 짖는 개,
기둥을 붙잡은 아버지,
소식 없는 아들,
그리고 떨어지는 감.
이 다섯 장면이 겹쳐질 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한 세대의 시간과 그 소멸을 느끼게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9. 마지막으로
나의 이 시는 거대한 서사를 가진 시가 아닙니다. 다만 나는 이 시를 통해 사람이 떠난 자리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시간을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집은 결국 비게 됩니다. 그러나 그 집의 마당에는 여전히 감나무가 서 있고, 때때로 바람이 지나가면 툭, 하고 어떤 시간이 떨어집니다.
이 시는 바로 그 떨어지는 시간의 소리를 기록하고, 그 시간에 스민 한숨과 기억을 수채화처럼 그려보고자 한 작은 시도였다 할 것입니다.
부디, 이러한 작은 감정들이 조용히 서로에게 스며 눈을 감아도 손을 놓지 않는 느낌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外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