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세상의 중심은 흔들리며 가는 거야
창밖에 제대로 시선을 두지 못하는 동안 겨울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새해가 벌써 닷새째 지난해는 모두가 지치고 유난히 힘든 한 해였지만, 올해는 어쨌건 그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지난 수요일, 48년 전 군대 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 신년 모임에 가려고 가락시장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몇 분 남짓한 시간, 한 편의 시는 삭막한 도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스크린 도어에 붙은 장영춘 시인의 "첫발"이 눈에 띄는 것을 보고 의미 없는 우연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시를 감상하며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순간, 뉴욕에서 방금 딸이 보내준 손녀의 사진과 오버랩된다. 손녀, 재이가 첫 발자국을 뗀 것이다.
첫발
- 장 영 춘 -
첫 발자국을 떼는 것은
한 우주를 여는 것
넘어지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하지
아가야 세상의 중심은
흔들리며 가는 거야
♥ 그림 협찬 : 늦깎이 그림쟁이 아내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혀를 내밀고 메롱하는 입, 첫 발자국을 뗀 손녀가 앉고, 기고, 서는 과정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며칠 전 손녀, 재이는 네 발에서 두 발로 첫 발자국을 떼었다. 이제 손녀는 세상의 중심에 서서 흔들리며 살아가야 할 첫 신고를 한 것이다. 아직 삐뚤삐뚤 걷는 모습도 불안하고 뭔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첫 발자국을 떼는 순간, 사람은 혼자 걸어야 하고 험한 세상을 헤쳐가야 한다. 수많은 시도 끝에 성취한 첫걸음에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손녀, 재이는 앞으로 어떤 발자취를 남기게 될까?
선한 그림자의 발자취를 남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재이! 네가 아름다운 사랑의 발자취를 남기기를 할미, 할배는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