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아버지의 향기 속으로

by 양순길

언제 불러도 그리운 아버지!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봅니다.


생전에 무뚝뚝하고 과묵했던 당신께서 평온한 영면의 길로 가신 지 어느덧 16년, 시간의 흐름이 화살과 같다더니 참으로 빠릅니다. 뜨락에 연분홍으로 갈아입은 진달래를 바라보며 그리움에 펜을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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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 이은상 시인의 ‘진달래’를 떠올려봅니다.


수집어 수집어서

다 못타는 연분홍이

부끄러워 부끄러워

바위틈에 숨어 피다

그나마 남이 볼세라

고대 지고 말더라


이보다 더 허망한 꽃이 어디 있을까요? 인생이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이별할 때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 위안은 어쩌면 그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언젠가 좀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입니다. 우리 가족과 함께한 수많은 시간 속에 힘들고 어려웠던 당신의 생애가 한 폭의 그림처럼 스쳐 지나갈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영면의 세계로 떠난 당신의 인자한 모습이 나에게 포근한 햇살처럼 마음속에 숨어있는 슬픔을 밀어내곤 합니다.


봄바람이 이정표가 되어 새로운 곳을 안내하고 청명한 하늘의 구름이 그늘이 되어 유명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더해주는 요즘, 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 아름다운 빛을 보게 해 준 당신과 술 한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끔 아내와 함께 술 한잔 하며 생전에 당신과의 추억을 더듬어 보곤 하는데, 1974년 어느 날 단둘이서 인천 동인천 부근 소갈비 전문 식당 청호정에서 외식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당신과 나눈 진솔한 삶의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님께서 저에게 술을 따라 주시면서 “네가 갈비를 그렇게 잘 먹는 것을 보니 내가 그동안 너를 굶긴 것 같구나.” “앞으로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어야지.” “군자에 있는 땅을 팔았는데 이 돈을 어디에 쓰면 좋겠냐.” 제 생각으로는 “인천 남동구 간석동이나 영종도의 토지를 매입하면 좋겠네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나는 부동산에 혜안과 총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생각해 보고 투자할 곳을 찾아보자.” 그런데 몇 개월 지난 어느 날, 불현듯 경기도 남양만에 간척 사업을 하기로 했다.라고 저에게 통보하셨지요. 간척 사업은 일반인이 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거의 승산이 없다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도전은 애초부터 무모한 도전이었고 결국 브로커의 사기 행각에 농락당한 것입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식의 투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당신의 마음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중도에라도 더 적극적으로 간척 사업에 손을 뗄 수 있도록 말려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업이 실패의 길로 들어선 이후 당신의 초췌한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서 차마 마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 과묵했던 당신이 거의 전 재산을 잃고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담배를 한번 깊게 빠끔 피우고는 연기를 내뿜으며 한숨을 쉬는 당신의 모습에서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제 어두웠던 과거사를 뒤로하고 밝은 분위기로 띄워 볼게요.


제가 10대 초반이었던 초등학교 시절, 경기도 군자에 얽힌 추억 속으로 퐁당 빠져 볼까요. 초등학교 시절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고 바둑, 장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 잡기에만 너무 공을 들인 탓으로 성적은 하위권에서 맴돌았던 저를 삶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알려준 당신의 지혜는 남달라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60년 전 당신께서 일요일마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3근과 소주 대병 한 개를 사 들고 수인역으로 가 협궤철도 수인선 기차에 몸을 싣고 달월역 또는 군자역에 하차한 후 도보로 3km 정도 거리에 있는 소작농 집으로 저를 데리고 갔지요. 그때 저의 심정은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는데 전혀 저에 대한 배려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소작농 집에서부터 농지까지 항상 맨발로 가게 했고 벼 베기, 모내기 등 혹독하게 일을 시킨 것 기억하시나요. 초등학교 시절 어린 나는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정말 당신이 원망스러웠으나 그래도 당신의 가르침을 거역할 수 없어 ‘내 탓이요'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당신의 가르침을 늘 가슴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너 이다음에 성장해 시골에서 힘든 일을 할 것이냐 아니면 책상에 앉아 편히 일하면서 살 것이냐?”라고 매번 하셨던 말씀, 지금도 당신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제가 훗날 대기업에서 영업의 귀재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질 정도로 고속 승진한 것과 퇴직 후 시작한 중국 사업, 때늦게 부동산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당신께서 어린 시절 저에게 몸소 가르친 산 교육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곁을 바람처럼 왔다 사라진 수많은 사람, 그 무리 속에 하나가 되어 머물다 가신 당신을 저는 생생하게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당신 생각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리움을 달래며 술 한 잔에 쉼 없이 달려온 나의 인생을 돌아봅니다. 당신이 그리워 술 한잔할 때면 술잔에 당신의 모습이 보이곤 합니다.

그때마다 아버지! 이승에서 못 이룬 꿈, 저승에서 아름답게 그리세요.라고 독백합니다.


가슴 벅차게 차오르는 그리움과 정겨운 당신의 품에, 당신의 잔잔한 미소 따라 만남의 강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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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협찬 : 늦깎이 그림쟁이 아내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저에게 물려준 서산 토지를 종잣돈으로 투자한 부동산 사업이 잘되어 요즘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움도 나이를 먹으면 자라는지 요즘 아버님의 모습이 더 눈에 자주 아른거립니다. 당신의 하늘나라로의 여행이 6남매와 자손들에게 지금보다 더 화목하고 돈독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랐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저와 저의 아내, 손주들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당신을 기억해 주는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있을 것입니다. 어느덧 당신이 없는 삶도 벌써 16년이 지났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름에 잊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의 깊이에 따라 잊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 萬古의 眞理, 그립고 아쉬운 감고(甘苦)의 자취 새기며 본디 온 길 되돌아서 정든 山河에 밤하늘 지키는 별이 되소서. 묵향처럼, 난향처럼 가슴속 깊이 베어드는 당신의 향기 속으로 살며시 마음으로 전해봅니다.


아들 순길 陞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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