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바람 난 아내를 생각하며

늦깎이 그림쟁이 아내의 수상 소식에 눈물이 난다

by 양순길

그림 솜씨 유전자의 놀라운 힘을 보여주는 할머니에서 딸, 손녀로 이어지는 아내의 그림 이야기다. '2023년 경기도 어르신 작품 공모전' 미술 부문에서 장려상 수상 소식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인생이란 삶의 거친 운동장에서 많은 상황을 보게 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삶을 느끼게 해주는 작은 소망 속에서 참 행복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론 빈자리에 머무는 슬픔을 느껴 눈물을 흘리곤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 속에서 삶을 뒤흔드는 어떤 사람이 꽃이 되어 찾아온다면 그것이 나만의 외사랑이든 서로 간의 사랑이든 마음에서는 열정이 일어난다. 많이 행복해지고 슬퍼지기도 하면서 함께 꿈꾸어 온 순간 속에 아내가 꽃이 되어 온 오늘은 참으로 행복한 날이다.


작품 이야기 (아픈 손가락, 장애견 비몽)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가슴속 깊이 진실함을 품어버린 듯한 아내의 작품에서 삶의 따스함을 발견한다. 저희 반려동물 사몽의 가족(평상 위 엄마 사몽, 앞 큰애 아들 세득, 작은애 딸 비몽)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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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2022년 6월, 10마리를 처음 출산했는데 3마리는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7마리 중 2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5마리는 분양했다. 출산하는 과정에 힘이 들었는지 평소와 달리 예민해진 사몽에게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밥 먹고 있던 엄마가 젖을 더듬던 새끼, 비몽을 물어버린 것이다. 그 후 비몽에게 장애가 생겨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답답한 심정에 동물 병원을 찾게 되었다. 비몽의 상태를 지켜본 수의사가 “안락사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흐른다.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비몽을 생각하니 도저히 안락사시킬 수가 없어 비몽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와 함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시력도 정상이 아니고 그 자리에서 빙빙 도는 등 자폐증에 성장도 멈춰버린 장애견이 된 비몽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돌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답답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장난기도 있고 밝았던 엄마 사몽도 이 상황을 아는 듯 웃음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우리와 사몽에게 비몽은 아픈 손가락으로 남게 된 슬픈 사연이다.

장애가 있는 인간이나 개를 돌본다는 게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다. 하지만 나는 비몽의 장애를 사랑으로 극복했고 시각을 잃은 비몽은 다른 감각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비몽은 비록 앞을 잘 보지 못하고 자폐증이 있는 개이지만, 냄새와 소리를 통해 사람 위치를 알아낼 정도로 똑똑한 아이다. 분명히 다른 강아지들과는 다르지만, 똑같이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언젠가는 이별의 순간이 오겠지만 우리와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이어가자고 다짐한다.

여러 미술 전시회에서 수많은 작품을 접했음에도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는데, 이 작품 앞에서 나는 흐느껴 울 수밖에 없었다. 동정이나 연민의 눈물이라기보다는 내 일이 아니라고 쉽게 외면했던, 적당한 슬픔으로 대했던 나, 눈물 없이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슬픔과 아픔, 괴로움뿐만 아니라 감동과 희열의 눈물도 있으니, 눈물은 부정적인 감정의 표출로만 볼 수는 없다. 눈물에 녹아있는 견생(犬生)의 애달픈 사연을 통해 바쁜 일상에 쫓겨 잃어버렸던 감동과 눈물, 그리고 따스함을 느낀다. 그림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늦깎이 그림쟁이 아내, 언제 봐도 자랑스럽다. 그림에 입문한 지, 1년 6개월 만에 이룬 쾌거, 참으로 대견스럽다.

예술 창작에 뛰어든 것은 어린 시절 못다 이룬 꿈과 새로운 도전을 향한 열정 때문이 아닐까. 그림에 미쳐버린 아내의 모습에 동경의 눈길을 담아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서 마음의 소리를 묘사하는 아내의 심오한 사고(思考)와 신비한 미(美)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흔히 늦게 시작한 사람들에게 '늦깎이'라는 말을 붙이지만, 인생에 늦깎이는 없다. 꿈을 위한 도전에는 절대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라는 말이 실감 난다. 굳이 거창한 도전이 아니라도 괜찮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작은 시도가 의외로 새로운 시작의 물꼬를 틀게 할 수도 있다.

2023년 경기도 어르신 작품 공모전은 기발한 발상과 상상력, 따뜻한 공감을 형성해가는 작가의 일상 속 감성이 관람객에게 성찰과 표현의 기회를 제공하는 소통의 장으로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전 세계 많은 사람을 매료시킨 모지스 할머니는 75세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101세까지 살면서 맹렬하게 작품 활동했다. 그녀의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어 전국에서 축하했고, 그녀의 죽음엔 수많은 국민이 슬퍼하는 가운데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추모하기도 했다. 모지스 할머니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취미였던 일본 무용을 할 수 없게 돼 낙담해 있다가 외아들 권유로 92세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98세에 펴낸 시집이 160만 부 가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모든 사람이 이 사람들처럼 될 수는 없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나이를 핑계로 도전도 하기 전에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조금 늦으면 어때. 어차피 인생이란 정답은 없는걸,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다른 길로 돌아가면 되지. 여럿이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나를 지켜내야 한다.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모두가 고요히 잠든 밤이지만 많은 생각이 오고 가는 밤, 늦바람 난 아내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