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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Apr 24. 2022

착한 사람이면 안 그럴까

    흉악범이나 사기꾼을 다루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증언 중 하나는 "그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지를 줄 몰랐다"는 것이다. 범죄자의 이웃 주민이나 지인, 친지들은 그의 행각이 낱낱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심지어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알 수 있었던 수상한 면모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이가 찬 사람들은 대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조차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서 타인을 깊이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사람을 잘 본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은 저런 성향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즉, 사람을 잘 본다는 자랑은 타인의 언행을 확대하여 해석하기를 즐겨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실은 타인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은 상대방이 말하고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들 뿐이다. 그 대상이 가족이나 친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 친구가 직장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 자녀가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절대로 완벽하게 알 수 없다. 희대의 사기꾼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사람들은 특별한 바보가 아니다. 다만 누구나 그러하듯 자기가 사람을 잘 본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심리학이나 인간관계, 범죄를 다루는 책에서는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전문가들이 분석한 정말로 위험한 인물들의 특징을 알아두는 것은 물론 큰 화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느낌에 의해서 상대를 가리게 된다. 실제 상황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일일이 복기하고 분석하기도 힘들뿐더러, 어떤 것이 문제가 될만한 언행인지 판단하기에도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 보는 눈을 키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따라서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들을 모두 가려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착실하고 또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나를 배신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고집에서 한발 물러서야만 문제가 생기더라도 조금 더 성숙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선역이나 악역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존재한다. 누구나 타인을 오해할 수도 있고, 알고 보니 전혀 괜찮지 않은 사람과 가까이 지낼 수도 있다. 연륜과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지혜는 사람을 잘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타인을 제대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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