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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Jun 30. 2021

악의를 대하는 법

    세상에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유독 괴롭게 하는 악한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들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공격하고, 상대가 받아치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가 된 것처럼 거세게 화를 낸다. 감정을 권력처럼 휘두르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기분에 맞추기를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부류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괴롭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이런 사람을 상대해야 할 때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는 다양하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하고 무심하게 넘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분노하며 다툼에 휩쓸리거나, 아니면 악인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휘둘리면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더 많다. 어떤 대응법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살아가면서 최대한 악인과 엮이고 싶지 않을 것이고 만약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신의 에너지를 아끼면서도 악인으로부터 받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응법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악인의 행동 양식과 그 원인이 되는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악인은 특별한 사유 없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이로써 원한을 얻는 것에는 무슨 이득이 있는가? 실로 전혀 없다. 아무리 상대가 나에 비해 낮은 권력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나에게 득이 될 일은 없고 오히려 훗날 해가 될 가능성은 생긴다. 즉, 악인은 이처럼 이득이 되지 않는 일에 굳이 관심과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무의식적인 열등감,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이나 트라우마 등 다양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의 어리석음이다. 어리석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의 진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내부에서 솟아나는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화풀이 대상을 찾는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원인을 파악할 지능조차 뒷받침되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전가하는 방식으로밖에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악인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업무적으로 유능하다거나, 연구 성과가 뛰어나다거나, 다른 재능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것과는 관계없이 이는 진실이다. 사람이 살면서 모든 갈등을 피할 수는 없고 피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나서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원한을 사는 이는 어떤 관점으로 보아도 현명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의를 품은 어리석은 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만약에 당신이 원한다면 이들의 어리석음을 역으로 이용하여 악인으로부터 필요한 이득을 취할 수도 있다. 잘 살펴보면 악인 옆에는 언제나 비위를 맞추는 이들이 있고, 이들은 악인으로부터 비호를 받으며 많은 실리적 이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악인과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당신의 정신적 역량을 크게 소모하며, 따라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당신에게 이득보다 손해가 클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당신이 노력하더라도 악인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언제든 관계가 틀어질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당신의 에너지를 아끼면서 악인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대응법은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악인과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교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컨대 업무상 협업 관계이면 업무와 관련된 의사소통을 제외한 내용에는 일절 반응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에는 무슨 이득이 있을까? 어리석은 이는 자신의 문제를 상대에게 전가하고 싶어 하며, 악인이 만약 당신을 괴롭히기를 원한다면 비난을 던진 후 당신의 반응을 학수고대할 것이다. 당신은 이러한 악인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그가 원하는 반응을 주지 않음으로써 악인의 기대를 무너뜨리면 된다. 물론 개중 특출나게 덜떨어진 사람이라면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자신에게 상황의 주도권이 넘어왔다고 해석하고 더 날뛸 수도 있지만, 지속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자신의 전략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포기할 것이다. 이렇게 대응했음에도 당신의 마음이 괴롭다면 악인을 완전히 관찰자의 시각에서 한번 바라보아라. 그러면 그 사람이 날뛰는 것은 마치 발작과 같은 행동이며, 그것이 당신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함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악의를 품은 그 사람이지 당신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거나 반응해주더라도 악인은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적극적으로 당신을 괴롭혀 문제 상황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상대에게 전가하고, 타인을 휘두름으로써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악인의 행태를 가만히 구경하는 것이다. 악인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여주지 말고, 악인에게 휘둘려 함께 문제의 일부가 되지 말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서, 어리석은 이의 장단에 굳이 놀아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삶의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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