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으로 바라본 인간의 심연
어제 오징어 게임 시즌 3까지 다 보게 되면서 긴 여정의 결말을 알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몇 가지 고찰해 본 철학적인 생각들을 독자분들과 공유하고 다른 생각들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스토리나 작품성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리뷰하고 싶지는 않기에 생각들을 위주로 이야기를 꺼낼 것이고,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에 대한 평가를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글을 읽을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거의 모든 시청자들이 오징어 게임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현실에서도 그러한 게임이 운영되고 있다면 참가할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 우리나라에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아가고, 감당하기 힘든 빚을 안고 살아가며, 내일의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456명도 없을까? 작품 속에서는 게임의 진행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밖은 여기보다 더 지옥이라고. 게임을 하면 상금을 받아 빚을 갚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여기서 반대를 눌러 바로 나가게 되면 사채업자들에게 죽을 거라고.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의 운영자나 주최 측을 섣불리 비난할 수는 없다. 결국 그들이 선택해서 그 게임에 참가한 것 아닌가. 물론 게임에 대해 온전히 알려주지 않고 살인해야만 상금을 받는다는 것을 고지하지 않은 것은 주최 측의 잘못이 맞다. 그것은 비윤리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동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남들과 경쟁하여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는 경쟁 구조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하위 계층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게임 참가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두가 거절하고 지옥 같은 현생을 살아갈지는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현실 또한 지옥일 테니.
개인적으로 모든 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화의 제목이다. 작품 속 공유는 빌런처럼 등장했지만, 그도 그만의 철학이 있었고, 신념이 있었기에 그런 일을 나름 자부심을 가지며 수행했다.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그들과 같은 노숙자라면 빵을 선택했을까 복권을 선택했을까. 쉽게 판단하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 복권을 선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빵을 먹는다고 해서 내일의 희망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복권을 받으면 내일의 희망을 확률이라는 친구에게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숙자들의 선택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걸 보며 경멸하고 화를 내는 공유의 모습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는 확률을 증오함과 동시에 즐기기도 했다. 러시안룰렛을 하며 희열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인간은 오늘의 빵은 경시하고 내일의 복권을 쫓는 존재이다. 독자분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독자분들은 이기심과 이타심의 차이를 아는가? 이기심은 자기 생각만 하는 마음, 이타심은 남을 위하는 마음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타심의 정의에 하나가 생략되어 있다. 바로 남을 위해 '자기 생각만 하는' 마음이다. 작품에서 성기훈과 장금자(엄마)는 이타심을 지녔고, 조상우와 박용식(아들)은 이기심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성기훈과 장금자는 정의를 위해서 악의 무리인 주최 측과 싸우고 게임을 끝내자는 쪽에 속했고, 조상우와 박용식은 본인들의 우승을 위해 행동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성기훈과 장금자가 정의의 인물이고, 조상우와 박용식은 이기적인 인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성기훈은 자신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많은 참가자들을 희생시켰으며, 장금자는 김준희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 과연 그들의 정의는 진정 '남을 위해서만' 쓰였을까? 뭐가 됐든 분명 본인들의 욕구에서 비롯된 선택이고, 결과는 처참했다. 특히 아들을 살인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견디지 못한 장금자의 자살은 보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타심과 이기심은 좋고 나쁜 마음이 아니다. 오로지 본인의 마음에 대한 선택일 뿐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시즌 3의 결말을 본 시청자들은 대부분이 아기가 우승하는 막장 엔딩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222번 참가자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었지만, 성기훈의 자살로 아기를 우승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위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 선택을 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위해서이다. 아기는 모든 참가자들 중 유일하게 본인이 게임의 참여를 선택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런 생명을 죽인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과도 같다. 성기훈도 그걸 잘 알았기에 사람으로서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 메시지 자체는 성기훈의 무식한 신념을 싫어하는 나에게도 인상 깊게 느껴졌다. 아기도 사람이고, 그가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만 한다. 그걸 전혀 존중해 주지 않는 참가자들에게는 역겨움이 느껴졌다.
스스로 생각해 본 것은 훨씬 더 많지만 그것들의 가치와 글의 길이를 고려해 봤을 때 이 정도만 쓰도록 하겠다. 작품을 리뷰한 것은 아니기에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꼭 보라는 얘기는 쉽게 해주지 못하겠지만, 이미 다 본 사람들이라면 나의 고찰들을 보고 조금이나마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