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에 대한 고찰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대하

by MDJ

나의 생각을 적어 내려가기에 앞서 나는 심리학에 대해 문외한이고, 관심은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시야를 갖춘 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예전부터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몇 초 단위로 과테말라라는 나라를 떠올리고, <종이의 집>에 등장하는 베를린이라는 인물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에 등장하는 전화로 헛소리를 하는 여자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나의 두뇌와 그를 구성하는 뉴런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리적 설명처럼. 과연 사람이 누군가를, 무엇을, 어떤 것을 좋아하는 마음에는 논리적인 이유가 있을까. 이제 막 24번째 생일을 보낸 나에게는 그걸 파헤칠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다. 아무튼 서론이 길어졌으니, 이제 샤덴프로이데의 심리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들을 공유해 볼 생각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의 정신세계에 흥미를 느끼고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시길 바란다.

우선 샤덴프로이데에 대해 모르는 독자분들을 위해 정의를 써보자면 샤덴프로이데란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이다. 작은 일상의 미시세계에서부터 사회적, 국가적 이슈에 해당하는 거시세계까지 이 심리를 안 가져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 시험을 70점을 받아 좌절하고 있는데 내 짝꿍이 40점을 받아 상대적으로 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남의 불행의 관찰을 통해 기쁨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고, 너무 잘나가서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가 어떠한 과거 논란이 터져 나락을 가는 모습을 볼 때 소박하게 사는 나 자신의 자격지심을 남의 불행의 관찰을 통해 기쁨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들을 보며 찔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자신도 그렇다. 그 심리를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있더라도 뇌의 화학 반응이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diffusion은 일어났지만 reaction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샤덴프로이데에 대해 배척하고 외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샤덴프로이데를 인지하고 나의 미성숙한 심리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과 그 밑바닥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의 대처 방식과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양극단이 빚어내는 상반된 결을 띤다. 전자의 사람은 그 심리를 적어도 상대에게 표출하지 않고 나의 성공을 위한 자극으로 받아들이거나 상대에 대한 존경심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한다. 반면 후자의 사람은 나의 성공은 환경, 재능과 같은 외부적인(또는 선천적인) 요인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고 그들의 그러한 요인을 부러워하거나 그들의 실패와 몰락을 기다리며 나의 위치까지 끌어내리길 원한다. 연예인을 마녀사냥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이 심리가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내 울타리에 들어와 있지 않은 비즈니스 관계의 사람들부터 내 울타리에 들어와 있는(심지어 불가항력으로 작용하는)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심리를 가지고 나를 끌어내리려고 한 경험이 있다. 의도는 끌어내리려고 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난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 철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철이 들고 나서는 어른들이 어떨 때는 어린이보다 더 미성숙할 수 있으며, 모든 인간관계에는 기대를 하면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샤덴프로이데를 건강하게 적용할 줄 아는 사람들은 나의 성공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면서, 본인들도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도 그들에게 그러한 심리를 느끼면서도 같이 성공을 위해 올라갈 열정과 의지력을 얻는다. 그러한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고, 오래 만난 사이가 아니어도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속을 터놓을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나의 실패와 불행을 바라는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해가 지날수록 빠르게 병들고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고 불행만을 바라는 사회가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 트렌드의 기반에는 샤덴프로이데의 심연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별, 정치, 종교적 이념에 대한 갈등은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하지 않고 상대방의 불행을 바라는 태도에서 시작되어 그 어두운 부분은 그 자체의 사이클로 점점 증식된다. 물론 이 사회적 현상에는 샤덴프로이데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이기심, 공감 능력 결여, 인성 문제 등등 다양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남의 불행을 바라는 심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자극받기 위해 노력하는 마인드를 갖춘다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건강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따를 것이고, 존경할 것이고, 더 나아가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기분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고, 우울하고, 외롭고, 불행할 때가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우리의 인생을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며 언제까지 실패를 기다리는 시궁창에 방치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남의 불행으로 나의 기쁨이 오는 경우가 있지만, 나의 행복은 남의 행복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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